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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100대 드라마 ⑦사회변동] 68. NGO빅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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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12월, 경실련이 미국의 쌀 수입개방 압력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40년 전 시민운동가의 힘은 미약했다. 정부 정책에 ‘항변’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이들은 한국의 정치·사회 지형을 뒤흔드는 세력으로 성장한다. 선출되지도, 공인받지도, 일정한 형태를 갖추지도 않았으면서 정계·재계·언론계 등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60~70년대 당시, ‘운동성’이 있는 시민단체라면 YMCA·YWCA·흥사단·한국소비자연맹 등이 고작이었다. 이들의 관심은 생활 중심의 사회 개혁에 머물렀다. 하지만 80년대 후반 상황이 바뀐다. 87년 ‘넥타이 부대’가 가세한 6·10 항쟁이 성공리에 끝나자 그동안 민주화를 이끌던 재야 세력이 새로운 조직체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여성 운동이 앞장섰다. 87년 여성민우회, 여성단체연합(여연)이 결성됐다. 이어 89년 경실련, 공해추방운동연합(환경운동연합 전신)이 조직됐다. 이들을 만든 시민운동가의 대부분은 60~70년대 수감 생활을 한 학생 운동권 출신이었다. 새문안교회 출신으로 70년대 학생운동을 이끌던 서경석·유종성씨 등은 89년 부동산값이 폭등하면서 서민들이 자살까지 하는 현실에 자극받아 경실련을 조직했다. 최열씨도 수감 생활 중 환경운동을 구상했다.

YMCA· 흥사단 등 기존 단체도 여성·경제정의·환경 같은 이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이런 움직임은 94년 35개의 단체가 모여 ‘한국시민단체협의회’(시민협)를 결성하면서 절정에 이른다. 87년부터 이 때까지가 한국 NGO(비정부기구)의 태동기였다.
이후 색다른 흐름이 등장한다. 참여연대가 결성된 것이다.

시민협에 가입하지 않은 참여연대는 전교조·민주노총·여연 등과 함께 진보적 운동을 펴 나갔다. 97년 말 외환위기와 98년 초 김대중 정권의 등장은 시민사회계에 일대 변화를 몰고온다. 98년부터 정치·경제·사회·문화 개혁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수많은 NGO가 쏟아져 나온다. 김대중 정부는 예산을 보조하며 이들을 키워간다.

2000년 4월, 제16대 총선이 다가오자 시민단체들이 뭉쳐 총선시민연대를 결성한다. 과거 민주화 운동의 경험을 살려 정치인 ‘물갈이’에 나선 것이다. 16대 국회의원 선거 때 낙선운동 활동, 2004년 탄핵반대 촛불시위같이 이들은 적극적으로 정치 문제에 개입한다. 정치 참여로 인해 시민단체의 파워는 커졌지만 국민으로부터 의혹·불신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창호 중앙일보 시민사회연구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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