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여론몰이용 주택통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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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귀식 경제부 기자

최근 정부가 내놓는 주택 통계들을 보면 좀 이상하다.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는 의구심마저 든다.

건설교통부는 얼마 전 주택보급률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102.2%에 달한다고 밝혔다. 행정자치부는 29일 부동산 대책 발표를 이틀 앞두고 전체 세대의 55%(971만 세대)가 전국의 주택(1119만호)을 보유해 나머지 45% 세대는 무주택이라고 발표했다. 주택보급률이 100% 이상인데 절반가량이 집이 없다니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행자부는 또 89만 가구가 2주택 이상 보유자며 이들이 주로 서울 강남.송파와 경기도 분당.일산 등에 집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지역의 '주택 독식'을 집중 부각한 것이다. 무주택 서민들에게 집부자들 때문에 내집 마련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런 통계는 그러나 허점투성이다. 집부자 중엔 정부가 세제혜택을 주는 임대사업자가 대거 포함돼 있다. 건설회사 사장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미분양 주택을 떠안은 경우도 있고, 꼬박꼬박 세금을 내며 임대사업을 하는 사람도 있다. 주민등록상 세대를 기준으로 무주택 세대가 45%라는 것도 문제다. 1777만 세대 중엔 학교나 직장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사는 미혼 자녀도 포함돼 있다. 이런 기준이면 다주택 세대가 한 채만 남기고 모두 처분해도 658만 세대(37%)는 계속 무주택으로 남는다. 정부 스스로 주택보급률 102.2%가 거짓말이라고 인정하는 꼴이 된다.

게다가 행자부가 2003년 10.29 부동산대책을 내놓은 직후 발표한 2002년 6월 기준 통계와도 맞지 않는다. 당시 행자부는 "2주택 이상 보유 276만 세대가 814만 호를 갖고 있다"고 발표했다. 두 통계가 다 맞다면 2년도 안돼 2주택 이상 보유자가 89만 가구로 3분의 2나 줄어든 것이다. 그런데도 집값은 치솟았으니 '다주택자들이 집을 내놓으면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정부 논리는 엉터리란 말인가.

정부는 세금을 무겁게 물리는 등 다주택자를 압박하는 대책을 31일 발표한다. 그러나 건전한 투자자와 임대사업자마저도 투기꾼처럼 몰아가면 곤란하다. 정부가 특정 계층을 골탕먹이기 위해 통계를 내놓은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이유다.

허귀식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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