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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관광, 매력을 갖추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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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개성 시내로 들어가는 게 너무 쉬웠다. 지난 26일 개성시범관광단을 태운 버스가 서울 경복궁 주차장에서 개성 시내까지 차로 움직인 시간은 불과 한 시간 남짓. 북측 입국 사무소에서 검게 탄 얼굴의 북한 소좌(소령)가 불쑥 버스 안으로 올라온 순간 버스 안의 승객들 표정이 잠시 굳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인원점검을 하겠습니다"라는 서울말을 했고, 차 안을 슬쩍 훑어본 뒤 바로 내려갔다. 간략한 보안체크가 이뤄진 컨테이너 임시건물을 나오자 평양아리랑봉사소(상점)의 여성 직원 10여 명이 천막 아래 기념품을 늘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상상하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버스가 개성공단을 지날 때 현대 로고를 단 중장비들이 굉음을 내고, 길가의 남한 사람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기 때문일까. 개성 시내로 들어서며 건물 벽에 쓰인 북한 지도자 찬양 문구를 보기 전까지는 북한에 온 줄 잊고 있었다.

기자가 처음 북한 땅을 밟아보고 놀라웠던 것은 남한 관광단을 맞는 북한 측의 태도였다. 개성 시민들은 한 달 전부터 환경미화를 했다고 현대아산 개성사업소 이윤수 총소장은 전했다. 개성 중심가의 잿빛 아파트 베란다마다 화분이 놓여 있는 것도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것 같았다. 남한의 관광단이 온다는 사실이 이미 개성 TV에 방송됐다는 말도 들렸다.

북한 안내원은 박연폭포로 가면서 "개성에서 박연폭포로 이어지는 23km의 도로를 이달 초부터 단 12일만에 포장했다"며 "이걸 보면 우리의 의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연폭포 입구에 긴 특산품 판매대가 있었는데 폭포에서 30분 정도 올라가야 하는 관음사라는 작은 절 앞에도 같은 특산품 판매대가 있었다. 그들은 정말 개성 관광사업이 잘돼서 돈이 돌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북한이 서울의 코앞에 있는, 안방과도 같은 개성의 문을 연 것은 경제난 때문일 것이다. 오랫동안 사회주의를 하며 밑천이 바닥난 데다 폐쇄경제로 돈이 안에서만 맴돌고 있으니 인구가 늘어도 경제의 몸집은 허약하고 살기는 힘들 것이다.

경제발전을 위한 인프라가 없는 나라에선 관광이 가장 쉬운 외화획득 산업이다. 개성에는 남한에선 보기 어려운 고려 500년 역사의 유물.유적 등이 즐비해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장막에 가려 있던 북한 주민의 삶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것도 매력 요소다.

하지만 청자와 불화 등 고려 유물을 소장한 박물관은 허술하고 기념품은 거칠고 엉성해 집어들게 별로 없었다. 개성의 전통 요리들을 특색있게 내놓지 못한 점도 아쉬웠다.

관광은 상품이다. 북한이 힘들게 문을 연 만큼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개성관광이 매력적인 상품으로 개발돼야 한다. 북한 측과 현대아산은 본관광을 앞두고 북한 측이 받을 관광 대가를 놓고 줄다리기를 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상품이 제대로 개발되지 못하면 결국 인기가 떨어져 가격도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

수완 좋은 수퍼마켓 주인들은 매장 통로에다 구수한 빵 냄새를 일부러 퍼뜨린다. 영리한 구두닦이들은 날렵한 솜씨로 쓱싹쓱싹 소리 나게 구두를 문지르면서 광택제 향을 풍긴다. 손님들의 코와 귀를 자극해 지갑을 열게 하려는 것이다.

현대아산과 관광공사는 북측과 머리를 맞대고 관광객들에게 어떤 종류의 체험을 제공할지 연구해야 한다. 관광 대가와 가격은 그 다음 문제다. 코스와 일정을 다양하게 마련하고, 가능하면 맞춤식으로 제공해야 한다. 관광 중에 손님들을 사로잡는 풍성한 이벤트도 연출할 수 있다. 개성을 찾아서 꼭 기억하고 싶은 체험이 담긴 기념품이 있다면 관광객들은 집으로 갖고 가 오래도록 간직할 것이다.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을 때나 주민과 대화할 때 '북한의 법'을 지키도록 미리 교육하는 것도 필요하다.

개성 관광이 개성만의 테마를 가진, 독특한 체험의 관현악이 된다면 아무리 값이 비싸도 고객들은 지갑을 연다. 정부가 떠밀지 않아도 중.고생 수학여행이 줄을 이을 것이다. 이렇게 돼야 남북 간의 역사적 동질성도 느껴지고 상호 교류와 협력도 이뤄진다. 산고 끝에 태어난, 개성 관광이라는 옥동자를 건강하게 키우는 것은 이제부터의 과제다.

이영렬 산업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