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방첩 무방비…일본열도|소 레프첸코 폭로사건을 계기로 본 실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주일특파원을 가장, 일본의 정계·언론계를 무대로 스파이활동을 했던 전 KGB(소련비밀경찰)출신 「레프첸코」의 폭로로 일본의 허점이 다시 한번 노출되었다. 특히 주일미군의 존재는 공산권제국으로 하여금 미국의 군사 및 군사기술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일본의 전자산업발달 등 최신전자정보를 노리는 첩보원들의 좋은 미끼가 되고 있다. 그래서 일본은 스파이천국으로 불리고있다.
더우기 일본에는 간첩활동을 직접 규제하는 법률이 없다. 미일상호방위원조협정에 따른 비밀보호법, 미일안보조약 지위협정에 따른 형사특별법, 국가공무원 법 등이 있긴 하지만 비밀보호법과 형사특별법은 미일안보에 관한 경우에 한정되며 공무원 법은 일반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간첩사건이 적발되더라도 전파법·출입국관리법·여권법 등 개개의 행정법령에 의해 처벌되는 것이 고작이다.
이 때문에 일본에는 각국의 첩보기관, 특히 소련·북괴·중공 등 공산국의 첩보요원이 대량으로 파견돼 활약하고 있다. 2차 전후에 일본에서 물의를 빚은 소련스파이사건만도 12건에 이른다.
일본정보기관이 파악하고있는 일본내의 각국 첩보조직은 ▲소련의 KGB와 GRU(적군참모본부소속 첩보기관)를 비롯 ▲중공의 공산당직속첩보기관인 중앙조사부, 국무원산하 공안부, 중공군 총 참모부 정보국 ▲북괴의 정치보위부 제4국 등이다.
미국도 CIA(중앙정보국), ONI(해군 정보부), OSI(공군 정보부) ,NSA(국가안전보장국), 미육군 G-2(육군정보부), 미 태평양군산하 500MI 등 각 기관요원을 파견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산권 첩보기관원의 숫자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으나 「레프첸코」는 주일소련대사관·통상대표부·소련항공의 직원·타스통신을 비롯한 보도기관 특파원 등 일본에 파견돼있는 3백여 명 중 절반정도가 KGB나 GRU의 요원이라고 밝혔다.
북괴공작원은 일본정보당국이 잡은 전파채널만도 수백 개에 이르러 최소한 1천여 명이 일본에서 암약 중인 것으로 추산되고있다.
문제는 이 같은 각 국의 첩보활동을 일본인들이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레프첸코」의 경우 75년 일본에 도착하고 나서 불과 2주만에 일본사회당의 저명인사들과 접촉하는 등 본격적인 스파이활동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은 KGB로서는 가장 일하기 쉬운 나라였다』는 그의 증언에서처럼 거리낌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가 밝힌 활동 상을 보면 일본의 각계각층을 종횡무진 휩쓸고 다닌 셈이다. 그는 일본에 온 수개월 후 4명의 새로운 에이전트를 확보했으며 79년 10월 망명할 때까지 10명의 직속에이전트들과 월20∼25회의 접촉을 가졌다. 그는 또 유고슬라비아·필리핀·영국 등의 주일특파원들을 통해 일본의 정계·언론계인사들과 접촉할 수도 있었다
스파이활동에 대한 일본인들의 무관심은 「레프첸코」의 폭로발언으로 나타난 일본정계의 반응에서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일본인들은 이 문제를 「안보」차원에서는 물론 「정치 이슈」로 조차 취급하려 하고있다. 「레프첸코」의 증언이 보도된 10일 일본공안당국은『일부인사가 소련첩보 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받았다하더라도 이에 대한 법적 제재방법이 없다』는 견해를 밝혔을 뿐이고 「고또오다」관방장관과 「니까이도」자민당간 사장 등도 『경찰에서 벌써부터 알고 있던 사실을 갖고 새삼스레 떠들 필요는 없다』 『이런 일이 세계 어디서나 항상 일어나고 있다는 인식과 자각을 하면 된다』는 등 여유 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레프첸코」가 앞으로 저서를 통해 일본인협력자의 이름을 공표 하겠다고 한만큼 그 명단이 밝혀질 경우 책임을 추궁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으나 대부분의 관측통들은 그것이 스파이활동에 대한 어떤 조치를 유발시킬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다.
문제가 되더라도 여야의 정치싸움이 될 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각 국 스파이들이 활동함으로 해서 일본에 각종정보가 유입될 수 있고 그들이 쓰는 돈 역시 일본에 뿌려지지 않겠느냐며 「농담 반」의 「국익론」을 펴는 견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일본을 통해 정보를 뺏기기도 하는 한국과 같은 입장에서는 일본의「정보안보」야 말로 중요관심사로 지적된다. 【동경=신성순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