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모든 개혁의 출발점은 경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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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를 특징짓는 대표적 변화는 괄목할 경제성장이다. "경제 제일주의"로 표방되는 정책이 수반하는 부작용에 대해 걱정하게 된 것도 실제로 우리의 경제발전이 일정 단계에 도달한 이후부터다.

정치.문화.사회 어느 것도 인간생활에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겠으나, 국가의 경제적 부를 축적하는 것에 우선한다고 할 수는 없다. 경제적 부를 소유할수록 문화적 가치를 향유하고자 하는 수요가 더욱 높게 나타나게 된다.

물론 깨끗하지 못한 부의 축적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사회의 독이 될 수 있겠으나, 여가에 대한 수요를 사치로 여기는 취약계층이 우리 사회에 공존한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시급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경험하게 돼 한동안 경제성장은 주춤했지만 그 당시에도 우리 국민의 화두는 경제개혁을 통한 경제발전이었다.

정경유착에 기인한 도덕적 해이가 경제위기의 구조적 근본요인이라는 분석에 따라 정치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정경유착은 사회의 부패에 관한 도덕적.제도적 방지 장치의 부재가 더욱 근본적 문제이지 정치제도를 바꾸어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 마디로 시장이 투명하게 작동하지 못하기에 부패가 생긴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장경제체제를 정착시키는 노력이 정경유착을 근절시킬 수 있는 첩경이라는 전략을 택했고, 이는 경제우선정책의 지속을 추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금 우리 귀에는 경제개혁이란 단어보다 정치.사회.언론개혁이란 말들이 더 크게 들리고 있다. 이러한 각종 개혁의 당위성은 물론 이해할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이들의 개혁과 경제개혁의 일관성 확보 여부다.

서로 다른 철학과 이념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추진돼서는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경제는 경제논리에 따라야 한다든지 또는 정경분리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결국은 현실적으로 분리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방증하는 것이다.

경제가 정치의 영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소극적 시각이 아니라, 정치도 시장경제 이념에서 이탈해서는 안 된다는 적극적 전략을 취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경제개혁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여타 부문의 개혁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제발전이 여타 부문 발전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은 될 것이다.

또한 이념적 대립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 경제부문의 장점이기도 하다. "경제만능주의"를 부르짖는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소모적 정쟁을 최소화하면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길이다.

기업지배구조 개선, 금융감독 강화, 취약계층 보호와 같은 경제개혁정책들은 실제로 사회의 투명성과 정의를 높여 여타 부문 개혁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법과 질서를 준수해야한다는 의식이 약화하는 현상이 보인다. 집단이기주의 행태가 사회문제화하고 있으며, 노조의 정치적 성격도 짙어지고 있다.

시장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예견하고 행동하는지가 궁금하다. 더욱이 글로벌경제에서 시장에서의 의사결정자가 국내인만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시장이 동정심을 갖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이익집단의 투쟁을 정치.사회적 문제로 보고, 그 해결방안이 시장원칙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 이는 실패의 지름길이다. 모든 행위는 결국 시장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임을 인식해야 한다.

*** 시장경제와 시장방임은 달라

정치권은 불안정하고 동시에 각종 집단이기주의가 횡행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이 나라 리더들이라면 정치개혁이 경제선진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국민에게 무엇을 해주겠다는 것보다는 국민에게 무엇을 하라고, 즉 땀과 노력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이것이 진정한 정치개혁의 이상이 돼야 한다.

만일 경제가 정치에 비해 하위개념이며, 경제는 저절로 성장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이는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낼 뿐이다.

金仲秀 KDI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