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역대 대통령 친인척·측근 비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3면

비선(秘線). 공식체계에서 벗어난, ‘보이지 않는 선’을 말한다. 계선(系線)의 반대말이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장관으로부터 대통령에게 올라오는 공식 보고라인이 계선이다. 계선에 있지 않은 대통령의 친인척이나 측근이 막후에서 권력을 휘두른다면, 세상은 그들을 ‘비선 실세’라고 부른다.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비선 실세 논란이 정치권의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정윤회씨가 비선 실세로 지목되고 있다. 정씨가 오래전부터 박 대통령을 보좌한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청와대 비서관)과 함께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아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요즘엔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과 정씨의 갈등설까지 불거지고 있다.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이 뒤엉켜 있다. 이와 관련, 박 대통령은 지난 7일 새누리당 의원들을 초청한 청와대 오찬에서 “박지만 부부를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가족들이 서운해할 수도 있지만 역대 정권의 친인척 비리를 많이 봐온 나로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말대로 과거 정권에서도 대통령의 친인척이나 측근이 ‘정권의 그림자’로 막후 영향력을 행사했다. 대부분 끝이 좋지 않았다.

김현철(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

 1990년대 이후부터 살펴보면 김영삼 정부에선 차남 현철씨가 떠오른다. 정가에선 그를 ‘소(小)통령’이라고 불렀다. 야당 시절부터 집안 식구들을 정치판에 끌어들이지 않으려 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지만 현철씨만은 예외였다. 그는 87년 쌍용투자증권에 입사했지만 곧 그만두고, 정치활동을 하면서 아버지로부터 신임을 얻었다. 92년 대통령 당선과 함께 현철씨의 위상은 다른 사람이 넘볼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수시로 청와대를 드나들며 대통령을 단독 면담할 수 있었던 현철씨에게 정·관계 유력 인사들은 어떻게든 줄을 대보려고 했다. 그러나 현철씨는 97년 기업인들로부터 활동비 명목으로 거액의 돈을 받고도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혐의로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추락의 길을 걸었다. 김 전 대통령은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며 대국민 사과를 해야만 했다. 현철씨는 최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당시 반(半)공식적으로 일했던 나는 결코 숨어 다니지 않았다. (현 정권의 비선 실세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는 글을 올렸다. 문고리 권력을 행사한 장학로 부속실장도 1996년 부정축재로 단죄를 받았다.

김홍업(김대중 전 대통령 차남) →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

 한국 정치 사상 처음으로 정권교체를 이룬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비선 실세 논란을 피해가지 못했다. 김 전 대통령은 정권 말기에 ‘홍삼 트리오’로 불린 세 아들(홍일·홍업·홍걸)이 모두 각종 권력형 게이트에 휘말리면서 곤욕을 치렀다. 둘째 아들인 홍업씨는 청와대 비서관들을 연결고리로 인사에 개입하는 등 국정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결국 이용호 게이트를 수사하던 검찰이 그의 이권개입 의혹으로 수사를 확대하면서 알선수재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2005년 사면조치를 받은 홍업씨는 2007년 전남 무안-신안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3남 홍걸씨도 2002년 ‘최규선 게이트’ 수사 당시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36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장남 홍일씨마저 2003년 나라종금 로비 의혹에 연루돼 불구속 기소되면서 대통령의 세 아들이 모두 비리에 휘말리는 불명예를 안았다. 김 전 대통령도 아들들의 비리 연루 의혹과 관련해 대변인을 통해 “아들들의 문제로 물의를 빚고 있는 데 대해 국민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노건평(노무현 전 대통령 형) → 세종증권 인수 비리로 구속

 역대 어느 정권보다 도덕성을 강조했던 노무현 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는 거주지인 김해 봉하마을을 빗댄 ‘봉하대군’으로 불렸다. 정권 초부터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불거져 나왔다. 결국 2006년 세종증권 인수 청탁의 대가로 세종캐피탈 사장에게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건평씨의 재판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건평씨는 법정에서 “깊이 반성하고 많이 뉘우치던 중 동생의 사고로 상당히 괴로움을 느끼고 있다”고 심경을 밝혔다.

 노무현 정부에서 왼팔·오른팔로 불린 인사가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지사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두 사람을 ‘비선’이라기보단 ‘동업자’로 대우했다. 두 사람의 행보는 엇갈렸다. 이 전 지사는 정권 출범 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맡았다. 국정 운영의 방향을 좌우하는 최대 실세로 평가받았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선 그를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실세”(천정배 당시 의원)로 지목하고 퇴진을 요구했다. 결국 그는 국정상황실장에서 물러나야 했다. 2004년 총선에서 이기고 2010년 강원지사에 당선되면서 승승장구하는 듯했지만 강원지사 당선 직후 ‘박연차 게이트’로 유죄를 선고받아 아직까지 정치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안 지사는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대선자금을 받은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면서 상대적으로 국정에 영향을 미칠 기회가 적었다. 이후 충남지사 재선에 성공하면서 야권 차기 주자로 떠오른 상태다.

이상득 전 의원(이명박 전 대통령 형) → 저축은행 비리로 구속

 이명박(MB) 정부는 실세그룹이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MB정부가 레임덕에 빠지기 전에는 ‘영포회(영일·포항 출신 고위공직자 모임)’라는 비선 조직이 위세를 떨쳤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그의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정권 최고 실세로 꼽혔다. 이 전 국회부의장은 ‘영일대군’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었다. ‘만사형통(萬事兄通·모든 일은 형을 통한다)’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저축은행으로부터 로비 자금을 받은 혐의로 동생의 임기 중에 구속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박 전 차관은 2007년 대선 다음날 이 전 대통령의 특명을 받으면서 실세로 급부상했다. “당선자 비서실을 총괄하고 정권인수위 인선 작업을 마무리하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그에게 권력을 쥐어줬다. 당시 권력의 핵심으로 불렸던 정두언 의원이 인선 내용을 알려달라고 하자 “못 보여준다”고 맞설 정도였다.

 그는 정부 출범 이후에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으로 근무하며 ‘왕비서관’으로 통했다. 그러다 2008년 6월 정두언 의원이 “대통령 주변 일부 인사가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다. 박영준 비서관이 제일 문제다. 보좌관 한 명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치고 나오면서, 결국 청와대를 떠나야만 했다. 2009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발탁되면서 다시 힘을 과시했지만 권력은 오래가지 않았다. 박 전 차관은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등으로 2년6개월간 수감됐다가 지난달 성경책을 낀 채 만기 출소했다.

 이 전 대통령의 ‘50년 지기’이자 정치적 후견인이었던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은 2011년 기업체로부터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비선 실세 논란이 끊이질 않는 이유는 뭘까. “제왕적 대통령제가 낳은 어두운 그림자”라는 전문가들이 많다.

 윤희웅 민 정치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은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권한이 집중되다 보니 대통령과 신뢰 관계를 맺고 있는 친인척이나 측근 그룹이 각종 이권이나 인사개입을 위한 로비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하용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는 “대통령과 가까운 비선 실세들이 인사 전횡 등을 하지 못하도록 의회의 견제 기능을 강화하고, 청와대의 인사시스템도 더욱 체계적이고 전문성을 갖추도록 개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