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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면 돈 번다, 세계에 소문을 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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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박병원
전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경제자유구역법이 김대중 정부 마지막 해라는 최악의 입법 여건 속에서 2001년 말 국회를 통과했을 때 필자는 그래도 국운이 다하지 않았구나 생각했었다. 이 법은 과거 한국이 공업단지를 만들어 제조업과 수출로 나라를 일으켰다면, 이제는 맨하탄이나 런던의 시티, 홍콩 같은 세계적 비즈니스 센터를 만들어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과 내수를 중심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키워야 한다는 인식을 배경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노무현 정부 출범을 계기로 동북아 물류 허브, 동북아 금융중심, 동북아 비즈니스센터 구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같은 시기 두바이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MENA) 지역의 금융중심, 비즈니스 센터가 되겠다고 선언, 국제금융센터 설치법을 만들고 헌법까지 고쳐 이 구역 내에서는 아랍에미리트연방 법률을 배제하고 자율권을 주기까지 하였다. 이 국제금융센터의 장은 영국인으로 임명하고 독자적 재판소를 두어 사실상 영미계의 법제와 영국의 금융감독 규정을 적용하여 적어도 규제환경 면에서는 런던에서 금융업을 영위하는 것과 같도록 해 주었다. 또 여기서 일 할 선진국 전문인력들의 생활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아파트를 엄청나게 지어대고, 선진국의 좋은 학교와 병원을 유치하는 한편, 실내 스키장까지 지어주는 그야말로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 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그 후 10여년, 두바이는 세계 25대 은행 중 21개, 20대 금융투자사 중 11개, 10대 보험사 중 8개, 15대 국제 로펌 중 8개를 유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MENA의 국제금융 중심, 비즈니스 중심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아프리카, 남미, 유럽으로 가는 환승공항으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어 우리 인천공항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으며, MENA 지역 내의 교육, 의료 허브가 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어떤가? 인천경제자유구역으로 가는 다리와 철도, 사무실과 아파트 등 하드웨어 건설은 거의 계획대로 진행된 반면 최종 목표인 외국인투자 유치 실적은 너무 보잘것없다는 것이 문제다. 외국인투자 전체가 정체상태에 빠져 있지만, 금융업의 경우 한국에 대한 관심이 더 줄어들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가 최근 빈발하고 있다.

 한국에서 금융업을 해서 돈을 벌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 이미 세계적으로 다 알려진 것 같다. 우리금융 매각을 위한 입찰이 중국의 안방보험 이외에는 입찰참여자가 없어서 무산되었다는 사실은 한 때 한국 금융회사에 관심을 보이던 세계적 투자자들이 이제는 관심이 없게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주가가 상당히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살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외국계 금융회사들 중에는 일부 사업부문을 철수해 버린 사례도 있고, 배당의 확대나 자문용역비 등의 형태로 한국에서 자금을 회수하려고 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서 일부 언론은 비판적인 여론을 자극하고 있는데, 이러 비난과 간섭은 외국 금융회사의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인상을 더 나쁘게 만들어 투자를 더 줄이면 줄였지 투자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되기는 어렵다. 글로벌시장에서 금융업을 영위하고 있는 그룹 본부의 입장에서 보면 “자본과잉” 상태에 있어 수익성이 낮은 곳에서 돈을 빼서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곳에 투자하는 것은 투자자의 정당한 권리인 동시에 경영자의 책무이기도 하다. 자본이 과잉이고 다른 곳에 투자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치한다면 그런 CEO는 다음 주총에서 당연히 해임되어야 하고, 우리나라 같으면 소액주주나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배임죄를 추궁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은행에 요구되는 자본적정성 등 관련 규제와 관계 법령을 어기지 않는 한 누구도 배당에 대한 경영상 판단에 간섭할 권한이 없다. 임금, 배당, 투자를 독려하는 최경환 부총리의 정책방향이 오히려 맞을 것 같은 현 경제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외국 기업이 우리나라에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게 하고 싶은가? “한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더라”라는 소문이 나게 만드는 이외에 길이 없다. “한국에 섣불리 투자했다가 회수가 어렵다”는 소문이 나게 해서는 소탐대실이 될 뿐이다.

박병원 전 전국은행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