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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B와 일본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소련 시사주간지 「신시대」(노보예 브례미야)의 동경 특파원, 이름은「스타니슬라프·레프첸코」.
요즘 미국 하원 정보위 청문회에 나타난 이 사나이의 정체는 79년 동경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소련군 현역 소령, KGB 일본과 특별 요원, 동경지부 활동반 반장대리다. KGB라면 소련의 「국가보안위」, 바로 비밀관찰조직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미 하원에서 폭로한 일본의 KGB 협력자들이다. 2백명에 가까운 이들 일본인 가운데는 각료, 언론인 등이 포함되어 있고, 두 회당엔 정치자금까지 대주었다고 한다.
우선 KGB의 음모보다는 일본인들의 그런 속성이 놀랍다.
언젠가 일본의 한 외교관은 일본인 스스로를 『등뼈 없는 개인』이라고 표현한 일도 있었다. 바로 그대로의 모습을 사건에서 보여주었다.
일본 패전직후 일본인과 접촉했던「맥아더」 장군은 『일본에서 비밀을 지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을 그의 보좌관에게 토로한 일이 있었다. 일본인들과 무슨 비밀회의만 하고 나면 예외 없이 그 사실이 누설되고 신문에까지 대서특필되는 것에 실망한 것이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맥아더」는 일본 각료의 그 누구도. 만나주지 않았다고 한다.
타보누설은 무슨 이해관계에 앞서 비밀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심리작용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일본 국민성의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
이런 일은 일본과의 외교교섭 중에서도 우리가 빈번이 경험하는 일이다. 글쎄, 국가이익의 존중이라고 변명할지 모르나, 그보다는 차원이 낮은 변능적 심리상태인지도 모른다.
스파이전쟁에 악랄한 KGB가 그런 것을 이용 안할리 없다.
이런 일도 있었다. 소련은 지금세계 1백여개국에 무역관을 두고 있다. 그 가운데 3분의1은 단1시간의 무역활동도 하지 않고 있다.
한 예로 파리주재 소련무역관은 프랑스의 대소 무역적자는 해마다 늘어나는데, 그 인원수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파리의 소련 무역관이 KGB의 소굴이라고 생각하면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프랑스 남자와 결혼한 소련 여성은 2천5백명도 넘는다. 이들의 상당수는 얼마 만에 이혼했다. 이 여성들이 재혼을 하고 나면 성이 바뀌어 정체를 쉽게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프랑스사회에 이처럼 깊숙이 파묻힌 그 수많은 소련여성들이 무슨 일을 할지는 짐작이 된다.
개성이 강한 서구인들이 그 정도인데 일본인을 협력자로 만드는 것은 너무도 쉬울 것 같다. 더구나 전쟁의 두려움도, 공산국가의 응험한 책략도 실감하지 못하고 사는 일본인들이 KGB의 눈에는 둘도 없는 고객일 것이다.
문제는 그 어깨 너머에 한국어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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