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동경은 소 스파이 천국|전 KGB 소령 레프첸코가 폭로한 대일 활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일본의 사회당·공산당이 소련 첩보 기관의 자금 지원을 받고 있었다는 전 소련 비밀 경찰 (KGB) 소령 「레프첸코」의 폭로는 일본 조야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자금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사회당·공산당의 관계자, 일소 의원 연맹 등은 입을 모아 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나 국민의 차가운 눈초리를 피할 수 없게 됐으며 특히 제1야당인 사회당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레프첸코」 충격은 마침 사회당을 중심으로 한 일본 야당이 「나까소네」 새 내각의 우경화에 대한 정면 대결을 선언하고 이번 임시 국회 및 내년 초의 정기 국회에서 대여 공세를 준비하고 있는 시점에서 터진만큼 앞으로의 일본 정국 운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아스까다」 사회당 위원장은 10일 즉각 기자 회견을 갖고 자금 수수 사실을 부인하면서 『소련의 위협을 핑계로 「나까소네」 내각의 대소 군비 확장 정책에 지원 사격을 하려는 의도가 아니냐』고 말했으며, 11일자 아사히 (조일) 신문은 「정치색 짙은 의사록 발표」라고 했다.
다음은 「레프첸코」가 밝힌 자신의 첩보 활동 내용이다..
『모스크바 대학 부속 아시아·아프리카 연구소에서 6년간 일본어·역사·경제·문학을 공부했다. 65년에 당 중앙위 국제부로부터 일본 공산당 기관지 「적기」 모스크바 특파원의 비서 겸 통역으로 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공식적으로는 소련 적십자 요원이었으나 실제로는 일본 공산당에서 파견된 「적기」특파원의 활동을 체크, 매일 국제국 일본과에 보고하는 것이어서 나는 이를 거부했다.
71년 KGB의 대외 정보부 간부의 권고로 1년간 KGB요원 훈련 학교에 들어갔다. 학교를 마친 72년 가을 KGB 제1관리 본부 일본과의 특별 요원이 되어 일본 사회의 모든 계층에 박혀있는 에이전트·일본 사회당·일본 정보 기관의 활동 상황 등 20개에 달하는 보고를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74년 제1관리 본부의 지시로 정치 정보 수집을 위한 현지 첩보원으로 발탁돼 1년간 소련잡지 「신시대」에 근무하며 훈련을 쌓았다. 일본 도착 후 특파원을 가장하기 위해서였다.「신시대」의 수습을 마쳤을 당시 이 잡지에는 12명의 외국 특파원이 있었는데 그중 10명은 KGB요원이었다.
75년2월 가족과 함께 동경에 도착, KGB 동경 지부의 정치 정보 수집 요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신시대」에는 월 1∼2회 원고를 보냈다.
동경에 온지 2주일 후 전임자로부터 일본의 유력한 연락 상대를 소개받았으며 제1야당인 사회당의 인사들과도 만났다.
내가 이용한 에이전트 중 4명은 유명한 저널리스트였다. 이들은 집권 자민당의 고위층과 접촉했으며 각료를 포함한 정부 고위 당국자들과도 접촉했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주요 내외정책의 추진 계획에 대한 비밀을 구두 정보 혹은 자료로 소련에 보낼 수 있었다.
그중 1명은 3백만부 이상의 발행 부수를 갖는 대신문사의 사주와 가까운 인물 이어서 그를 통해 각종 모략 공작을 할 수 있었다.
에이전트가 되기 직전 그는 「주은래 유서」를 신문에 썼는데 이것은 소련이 70년대에 날조한 것 중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였다.
주은래 유서는 KGB 제1관리 본부의 전문가들이 만든 것으로 모택동 사망 직전 중공 지도부내의 심각한 대립상을 그린 것이었다.
언론 기관의 다른 에이전트는 일본 정보 기관이 내는 비밀 자료에 접근, 이 정보를 KGB에 흘려주었다.
또 한사람의 에이전트는 일본 사회당의 고급 당원이었는데 그는 사회당이 우경화한다든가, 중공과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회 당내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소련은 국회의원이 일본 정부에 모스크바와 관계를 강화하도록 설득시킬 것을 요구했으며 이 그룹의 회장은 관계자의 급여·월간지 발행을 의해 KGB로부터 적지 않은 돈을 받았다.
KGB는 70년대에는 사회당의 정치 강령을 효과적으로 컨트롤 할 수 있게 됐으며 고위 지도자 10명 이상을 에이전트로 고용했다.
모스크바의 지시에 따라 외무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에이전트를 시켜 이탈리아가 중공에 비밀리에 원자로를 팔려고 하고 있다는 경보를 흘려준 일이 있다. 이 조치는 일-중공 관계를 떼어놓으려는 의도가 있었다.
에이전트를 통해 중공 내부의 비밀 정보를 일본 정부 당국에 알려준 일도 있다.
중공이 베트남을 공격하기 직전 가진 회의에서 화국봉과 그 일파는 전면 공격을 반대했는데 등소평은 공격을 주장, 등의 주장이 이겼다는 것이었다. 이 공격이 실패하면 등소평은 권좌에서 밀려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작전의 목표는 일-중공을 이간시키고 일본이 중공의 정책에 의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작전은 성공해서 일본 지도층은 등소평 지배의 안정도에 늘 의심을 갖게 되었다.
이 같은 작전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KGB 동경 지부는 모스크바로부터 매일 2∼3건의 지시를 받을 정도였다. 그중 3분의 1 정도가 성과를 올렸다고 할 수 있다. 【동경=신성순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