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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사건은 일벌백계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나라 형법 제 3백47조를 보면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자 및 같은 방법으로 제3자로 하여금 재물을 교부 받게 하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케 한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만환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있다.
10년까지의 중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한 이 같은 규정은 사기행위를 엄중히 다스리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형법상 사기죄가 성립되려면 「사람을 기망하여」라는 범의가 증명되어야 하는데 인간의 심성과 관련되는, 고의여부를 가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횡행하는 각종 사기사건은 법의 이러한 허점을 악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게는 여러 사람으로부터 돈을 빈 뒤 원금의 일부만 갚거나 이자만 몇 번 지급하고 나머지 빈 돈은 떼어먹는 방법에서부터, 크게는 자기가 경영하는 기업체를 고의로 부실업체화, 은행이나 법원의 관리로 넘기면서 선의의 투자자나 채권자들을 골탕먹이는 경우까지 아주 다양하다.
서민들이 피땀 흘려 모은 돈까지 차별 없이 노리는 사기행위가 이 사회에 얼마나 큰 해독을 끼치는가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예컨대 적은 돈을 빌려주고 집을 송두리째 빼앗는 「급전사기」는 사기꾼들의 수법이 얼마나 교묘하며 악질적인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급전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채무액의 몇 배나 되는 주택, 점포 등 부동산을 담보로 잡은 뒤 갚을 날까지 원리금을 못 갚거나 갚으려해도 교묘한 방법으로 못 갚도록 한 뒤 담보물을 처분한다는 것이다.
또 이른바 「대리점사기」는 불공정한 약관을 체결하고 보증금을 받은 다음 거래를 하면서 사소한 약관위배를 유발시켜 이를 구실로 보증금을 가로채는 경우다.
이 같은 사기의 피해자가 대부분 무지한 서민층이거나 법률지식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문제는 한층 심각해진다.
사기를 당한 충격으로 가정파탄, 정신질환에 걸리기도 하고 심지어 자살하는 사람도 생긴다.
사기사건의 횡행이 사회에 미치는 엄청난 해독에 비추어 형사처벌을 강화해야한다는 소리가 나온 지는 오래된다.
그러나 현행법 해석상 이들을 사기나 배임으로 처벌할 가능성은 있다해도 실무적으로 행위에 대한 「동기」를 포착할 수가 없어 형사상 사기사건으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것이 당로자들의 고충인 것 같다.
범의를 가리기 어려우므로 피해자들은 형사사건보다 민사적인 방법에 호소해 보지만 대법원에서 흑백이 가려지기까지 시일이 많이 걸릴 뿐 아니라 비용을 감당하기도 어려워 사실상 단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법의 허점을 악용한 사기사건이 사회악이라고는 해도 현행법상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 법조인들의 말이다.
그러나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해서 언제까지고 이 같은 사회적 독버섯을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범행의 고의여부를 가리기 어렵다면 법을 고치는 일도 생각해 볼 수 있고 신축성 있게 운용할 수 있는 방안도 다각적으로 검토해 봄직하다.
때마침 경찰은 이미 민사사건으로 판정, 무혐의 처리한 사건까지를 포함 모든 사기사건에 대해 일제수사를 착수했다는 소식이다.
물론 사법경찰의 단속은 현행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법적으로 근거가 없다해서 뻔히 사회악임을 알면서 방치하는 것은 사직당국이 취할 정도는 아니다.
경찰의 이번 일제단속이 현행법체계와의 큰 충돌이 없는 범위 안에서 일벌백계로 다스려 성숙 사회의 명랑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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