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벗을 중고생에 어른들이 지나치게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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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렇게 한번 가정해 보자. 내년부터 국민학교 어린이와 대학생에게 교복을 착용하게 한다고.
아마 대단한 논쟁이 벌어지게되고 끝내는 교복착용이 실패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시장에 쌓이고 쌓인 모양좋고 값싼 옷을 누가 입어야할 것이냐도 문제이겠지만 비교육적이고 비민주적인 제도라고 결론짓게될 것이다. 대학생의 경우는 더욱 심한 반대에 부닥치게 되리라.
자율에 역행하는 획일적인 통제라고 비난할 것이며,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수일과 심순애」의 교복시대로 되돌아가야 하느냐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 생각을 들려보자. 내년부터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교복을 벗게 되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일제의 잔재를 벗는 느낌이어서 더욱 그렇다.
내년부터 중학교 신입생은 국민학교때 입던 식으로 옷을 입고 학교에 가서 공부한다는, 지극히 평범하고 간단한 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2학년은 1년전에 입던 식으로 입으면 된다. 이것이 교복자율화다. 자율이라고 강조한 것은 학생 스스로가 옷을 선택하여 입을 수 있도록해주자는 관점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어른들은 교복자율화를 앞두고 지나치게 과민한듯 하다. 예를 들면, 교복자율화는 집안 살림을 어렵게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면학분위기를 흐리게 할지도 모른다고 염려한다. 청소년들에게 빈부의 차를 절감하게 하며, 생활지도가 어려워진다고 걱정한다. 신문도 대서특필한다. 빗나간 청소년의 사례를 자세히 보도하면서 교복자율화를 앞두고 더욱 조심해야한다고 경종을 울려준다. 이모든 걱정과 기우가 눈사람처럼 덩어리져서 우리를 겁주고 있다.
내년부터 그 거무튀튀하고 빡빡하게 느껴지는 교복을 벗는 것이 아니라, 마치「교복자율화」라는 무시무시한 옷을 만들어놓고 그 옷을 입혀야 한다는 겁에 빠져 있는 느낌마저 든다.
어떠한 변화에도 부수적인 문제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한복을 입고 한옥에서 살던 엊그제의 우리가 양장과 양복에 익숙해졌고 현대식 편리한 가옥구조에 더 적응이 잘 되어 있지 않은가.
교복자율화를 할 당사자인 학생들은 오히려 담담하고 대부분이 건전한 것 같은데, 우리 어른들 쪽에서 오히려 흥분하고 지나치게 문제를 의식하고 있지 않나 차분히 생각해 봄직도 하다. 하기야 20년, 30년, 40년동안 중·고등학교를 교복과 밀착시켜 생각해오던 우리의 고정관념이 교복자율화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에도 수긍은 간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교복을 입혀 놓자는 이야기는 성립되지 않는다. 교복자율화로 파생되리라고 짐작하는 걱정들은 우리 어른들이 솔직해지는 데에 그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고 본다. 우리 어른들이 우리의 현실과 각자의 신분에 적합한 옷을 입도록 노력하면 걱정의 반쯤은 해결될 것이고, 걱정의 나머지 반은 우리 어른들의 일상생활을 온당하고 건전하게 영위해 나가면 된다. 또 옷 입는 외형적인 자율을 통해서 정신적인 자율을 기대할 수 있다는 교육적 가치를 접어 두고라도 그 거무튀튀하고 빡빡하게 느껴지던 교복을 벗게 하고 젊은이들에게 선택의 여유를 주게된다는 이 사실만으로도 홋날에 가슴 뿌듯한 일로 느껴질 것이다.
▲36 대구생 ▲이대및 동대학원 졸업 ▲75년 이대에서 문학박사 ▲67∼80년 이대교수 ▲현 이대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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