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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상기씨 자살사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사건·사고로 얼룩졌던 한해가 저문다. 때로는 우리의 가슴을 섬뜩하게했고 때로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올렸던 사건들. 이들사건에서 우리는 많은것을 배우기도 했다. 말없는 현장, 그 현장의 흔적을 찾아 뒷얘기들과 교훈을 다시 음미해본다.
『부정한 방법으로 치부한 인간들을 저주하고 그들에게 복수하기위해 죽음의 길을 택한다.』
은행 차장의 신분으로 원진그룹이란 기업군을 거느리고 스포츠와 사회사업에 돈을 물쓰듯하며 폭넓은 활동을 해왔던 김상기씨(37) -지난4월10일 그가 자살로 일생을 끝맺음한 이후 8개월이 지나는 동안 그가 유서에서 밝혔던 「저주」와 「복수」의 파문은 너무 엄청났다.
그의 죽음은 자신이 아끼던 가족, 19년동안 몸담았던 은행과 동료행원·고객·원진그룹·정신장애자 수용시절인 박애원등을 파산 또는 시련의 골짜기로 몰아넣었다.
김씨의 미망인 신문자씨(37·전조흥은행탁구선수)와 1남2녀는 지난 8월말 대지 60평·건평62평(싯가 8천만원)의 집(서울연수동84의1)을 채권자에게 물려주고 거의 빈털터리가 된채 전세방으로 옮겼다.
김씨 유족들은 전세방을 구할 돈조차 없어 고민하다 박애원 원장 박춘식목사(55) 가 자신의 아들집을 은행에 담보로 맡기고 빌은 1천만원으로 홍은동 Y상가아파트에 전세방을 얻어주어 살고 있으나 끼니를 걱정해야할 정도로 딱한사정.
부인 신씨는 남편이 숨진뒤 『그 많던 재산중 일부는 빼돌려 놓았을 것이란 오해를 받기도 했었다』며 바깥일을 너무 몰랐던 자신이 한스럽다고 했다.
김씨의 연희동 집은 『매맞아 번 돈 6천만원을 떼였다』는 「작은거인」 김태식선수의 가족이 차지했다.
김선수는 김씨에게 맡겼던 6천만원중 2천만원은 「유자녀 장학금」으로 공제하고 김씨집을 담보로 잡은 채권자 2명에게 4천5백여만원을 지불하는등 모두 8천5백여만원으로 집을 인수했다는 것.
김선수와 가족들은 지난8월말 서울반포동 한신아파트(33평형)를 처분하고 연희동집으로 이사와 살고 있으나 유지비가 많이 들어 큰 곤란을 겪고있다.
김상기씨 자살후 은행측도 큰 곤욕을 치렀다.
은행측은 당초 86억원중, 27억원은 예금주가 인출을 포기, 59억원을 지불키로 했으나 예금을 포기했던 김규배씨(58)마저 뒤늦게 민사소송을 제기해 어려움을 겪고있다.
예금 27억원을 포기, 세상을 놀라게 했던 김상기씨의 수양아버지 김규배씨는 김씨 사망후 지병인 고혈압이 악화돼 계속 한방치료를 받으며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있다.
김규배씨의 외아들 종선씨(32·금흥개발대표)는 지난 10월16일 은행을 상대로 5억7천만원을 돌려달라는 예금반환청구소송을 서울 민사지법에 제기해 현재심리가 계속중이다.
김상기씨가 특유의 사업솜씨를 발휘, 원진무역·원진강건등 4개의 회사를 가진 기업군으로 키운 원진그룹은 지난6월과 7윌사이 부도를 내고 파산, 2백여명의 종업원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원진그륩의 사옥이었던 서울한강로1가63의6 3층건물(대지44평·건평1백12평)은 한일은행에 부채로 넘겨주고 공매를 기다리고 있다.
김씨가 지난77년 부인신씨의 명의로 사들인 성인 정신장애자 수용시설 박애원(경기도고양군벽제읍설문리701)은 현재부지 4천평이 은행에 5억원 담보로 가등기돼잇는 상태
김씨는 박애원 인수 당시 그 부지에 양말공장을 차릴 예정이었으나 원장 박춘식목사의 간청에 따라 공장건립을 포기, 법인 이사장에 취임해 매월 50여만원씩을 지원해주었다.
박목사는 현재 부지가 은행에 잡혀있다 해도 건물은 법인소유로 돼있기때문에 계속 사회복지시설로 남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박애원엔 성인정신장애자 1백30여명이 수용돼 치료와 함께 기술교육을 받고 있다.
김씨가 회장으로 있었던 체조협회는 그후 회장선임을 못하고 진통을 겪다 지난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저조한 기록을 올려 믄제점으로 지적되기도했다.
『돈의 행방은 묻지도 말고 어딘가 남아 있으리라 기대하지도 말라』 -김씨가 남긴 유서처럼 많은 사람에게 한(한)만 남긴 사건이었다. <한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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