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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팬으로 남편 내려쳐 살해한 아내…이례적으로 풀려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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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전 남편을 살해한 아내에게 법원이 징역형을 선고하면서 이례적으로 형의 집행을 유예했다.

A(46·여)씨는 11살 연상의 남편 B씨와 1996년 결혼했다. 만난지 1년 만의 결실이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B씨는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도박에 빠졌고 얼마 안되는 재산을 모두 탕진했다. A씨와 두 아들에게도 폭력과 폭언은 일상이 됐다. 폭행 행위는 더욱 심해져 흉기를 들고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렸던 A씨는 앞이 안 보이는 증상까지 나타나기 시작해 시력장애 4급 진단을 받았고, 결국 지난해 4월 B씨와 합의이혼했다.

하지만 B씨의 괴롭힘은 끝나지 않았다. 이혼 후에도 지속적으로 A씨를 찾아와 폭력을 행사했다. 서울가정법원이 A씨와 두 아들의 주거지, 직장, 학교로부터 100m 이내에 접근하지 말 것을 명령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B씨는 접근금지명령이 결정된 지 일주일만에 둘째 아들의 학교로 찾아가 “아들을 퇴학 시키라”며 소란을 피웠다.

A씨는 "아들 학교로는 찾아가지 말라"고 설득하기 위해 B씨를 만났지만 곧 말다툼이 시작됐다. 급기야 B씨는 싱크대 위에 칼을 집어들었다. 이를 막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시작됐고, A씨는 떨어뜨린 칼을 집으려는 B씨의 머리를 휴대용 가스레인지로 수차례 내려쳤다. B씨가 쓰러지자 프라이팬을 들어 머리와 가슴을 마구 때렸다. 급기야 컴퓨터 모니터까지 끌어와 B씨를 마구 때렸다. B씨는 갈비뼈 골절상 등으로 인한 과다출혈로 숨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 심규홍)는 A씨에게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A씨는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도망갈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B씨가 더이상 공격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가격을 멈추지 않았다”며 “부당한 공격에 대한 소극적 방어를 넘어서 적극적 공격행위로 나아갔다”고 판단했다. 다만 “결혼 후 지속적으로 B씨가 폭행을 일삼았고, 법원의 접근금지명령을 어기고 괴롭혔던 점 등 범행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봤다. 이밖에 ▶A씨가 이혼 후에도 B씨를 금전적으로 지원했고 ▶시어머니를 극진히 간호했던 점 ▶B씨의 두 누나의 부부가 처벌을 바라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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