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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부작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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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의약 전문가들은 '탈리도마이드'라 하면 치를 떨게 마련이다. 1953년 탁월한 수면제로 개발된 이 약은 입덧까지 가라앉히는 묘약이었다. 임신부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초기 동물실험에서도 별 이상이 없었다. 뒤늦게 정상 분량의 수십 배를 반복 투여하고서야 부작용의 실체가 드러났다. 9년 동안 독일.영국.캐나다 등에서 수만 명의 팔다리가 없는 기형아가 태어난 뒤였다.

일본 새 1000엔권의 초상화 주인공인 세균학자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 왼손 불구에다 지독한 가난을 딛고 일어선 '일본판 허준'이다. 세계 최고의 세균학자인 노구치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손수 만든 혈청과 백신을 품고 황열병이 창궐하던 서부 아프리카로 건너갔다. 현지 원주민들 앞에서 그는 "나도 모르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1928년 황열병에 희생됐다. 신약의 부작용은 이처럼 의사와 환자를 가리지 않는다.

의약세계에선 간혹 뜻밖의 부작용이 황금알로 둔갑하기도 한다. 미국 화이자의 비아그라는 원래 협심증 치료제로 출발했다. 정작 임상시험에서 협심증 환자에겐 기대했던 약효를 거두지 못했다. 그 대신 상당수의 시험 환자가 발기부전에서 가뿐히 회복되는 이변을 낳아 블록버스터 신약이 됐다. 지금 심장병 환자에겐 비아그라 복용은 절대 금물이다.

미리 부작용부터 걱정했다면 아스피린도 태어나지 못할 운명이었다. 이 약의 주성분인 살리신산은 1853년 의류 염료와 식품방부제로 대량생산에 성공했으나 독성 때문에 상품화에 실패했다. 반세기 뒤 독일 바이엘사가 살리신산과 아세트산을 함께 섞은 아스피린을 탄생시키면서 기사회생했다. 신형 독감이 유럽을 휩쓴 1925년, 아스피린 덕분에 수천만 명이 목숨을 건졌다.

지난주 일부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생명공학감시연대가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연구절차가 불투명하고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국민적인 찬사를 받아온 황 교수팀의 질주에 장애물이 돌출한 셈이다. 그러나 섣부른 판단은 곤란하다. 부작용도 부작용 나름이다. 황 교수의 인간 배아 연구가 난치병 정복에 청신호가 될지, 인류사회에 제2의 탈리도마이드로 빗나갈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