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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국군 포로 동생과 눈물 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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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 26일 북한 금강산 호텔에서 열린 제11차 이산가족 상봉 첫날 단체 상봉에서 북측의 국군포로 정진현(79.(右))씨가 남측 가족인 막내동생 한현(69)씨를 만나 오열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26일 금강산 호텔에 마련된 11차 이산가족 상봉장은 55년간의 긴 이별을 말해주듯 구구절절한 사연으로 가득 찼다. 남과 북의 아흔아홉 이산가족이 이날 오후 상봉을 했다.

지난해 7월 이후 13개월 만에 재개된 이날 상봉 행사엔 국군포로 두 가족을 포함해 남한에서 온 99명이 북한에 살고 있는 230여 명의 가족을 만났다. 남측 상봉자 가운데 25명이 아내 또는 자녀, 57명이 형제자매, 17명이 조카 등을 상봉했다. 특히 이날 행사에선 정한현(69)씨가 국군포로 형 진현(79)씨를, 오현웅(63)씨가 지난해 사망한 형 현원씨의 부인과 아들을 만나 눈길을 끌었다.

이날 만남에서 국군포로 정진현씨는 막내동생 한현씨에게 "부모님은…부모님은 어떻게 되셨느냐"고 물었으나 "두 분 다 돌아가셨다"는 동생의 말에 오열하고 말았다. 최고령자 최재선(97) 할아버지는 북에 살고 있는 세 딸이 "어머니의 사진"이라며 아내의 사진을 꺼내놓자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았다.

○…박문기(76)씨는 북측의 동갑내기 아내 임순희씨가 보여준 한 장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헤어질 당시 아내의 배 속에서 자라고 있던 아들. 황해도 연안이 고향인 박씨는 전쟁 당시 서울에서 혼자 학교를 다니다 1.4후퇴 때 아내와 생이별을 했지만 아내가 임신한 사실은 전혀 몰랐다는 것. 박씨는 "고향이 38선 이남이라 아내와 헤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아들까지 있었다니…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남측 최고령자인 박간남(97) 할머니는 북녘 손자와 손녀를 만났다. 박씨는 아들을 쏙 빼닮은 손자 종호씨에게 "너는 애비를 많이 닮았구나"라며 손을 꼭 잡았다. 그러나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자 "니 애비는 왜 죽었느냐, 55년 동안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다가 이제 와 죽었다니"라며 통곡했다. 손녀 종숙씨는 "아버지는 전쟁 때 많이 다쳐서 영예군인(상이군인)이 됐고, 오래오래 사셨다"며 가족사진이 든 앨범을 꺼냈다.

○…또 다른 최고령자인 평양 출신 최재선(97)씨는 이번에 북에 두고 온 세 딸을 만났다. 최씨는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평양에서 정미소를 운영하며 부인과 1남3녀를 뒀다. 그는 전쟁이 터지자 가족과 함께 피란을 내려오려 했지만 태어난 지 6일밖에 안 된 아들과 함께 움직일 수 없어 가족을 두고 홀로 남으로 향했다고 한다. 최씨는 이날 세 딸을 만나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나면 돌아가려 했는데 폭탄이 우리를 가로막았구나"라며 애통해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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