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신경성 심장병(1)|마음과 현대인의 병|이시형<고려병원 정신신경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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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씨가 심장이 약하다는 소리를 들은 건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심장전문의의 진찰도 물론 여러 번 받았다. 그때마다「신경성」이니 걱정 말라는 충고였지만 그의 내심은 그게 아니었다. 아주 중증심장병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의 안색은 창백하다 못해 백지 장 같았으니 누가 봐도 완연한 환자였다. 전화만 울려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누가자기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운동이란 아예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걸음만 빨리 걸어도 숨이 차는데 운동이라니? 그리 넉넉지 못한 봉급생활에도 휴양이란 명목으로 쉬길 잘했다.
김씨가 신경정신과를 찾아오기까지엔 1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신경성이니까 가보라고 해도 믿질 않았다. 『내가 심장병이지 정신병이냐.』 그는 이렇게 항의하곤 했다. 억지로 떠밀려 내 진료 실에 왔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의 불쾌 스러운 표정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진단은 아주 분명해졌다. 전형적인 「심장노이로제」였다.
김씨뿐 아니다. 소위「심장이 약하다」는 사람의 거의 모두는 진짜 심장병이 아니고 가짜다. 자기 스스로 내린 진단이지 심장검사에선 정상이다. 하지만 환자는 중증으로 확신하고 있다.
이들 신경성 심장병환자의 성격중 한가지 공통점은 매사에 소극적이고 소심하다는 점이다. 자신도 그러한 성격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심장병 탓이라고 변명하는 것 또한 특징이다. 이들의 소극적 생활은 심장병 때문이 아니고 그 반대다. 소심하기 때문에 쉽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러기 때문에 심장병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게 오래가면 진짜 병으로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사람일수록 운동을 해야 한다. 숨이 차고 심장이 뛰는 건 지극히 생리적 현상이다. 심장이 약해서가 아니라 강해서 그렇다. 진짜 심장병이라면 가슴이 두근거리기는커녕 그대로 멎어 버린다.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참 묘한 일은 진짜 심장병환자들은 대개 성격이 적극적이고 활동적이어서 아무리 의사가 쉬라고 권해도 쉬질 않는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휴양을 취해야 하는데 말이다. 반대로 심장노이로제는 쉬어선 안 된다. 심장이 약하다지만 약한 건 신경이다. 신경으로 가는 자율신경이 이상흥분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하든 적당한 흥분을 해야 하는데 소심증은 마치 난리라도 난 듯 과잉흥분을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성격파악, 적극적인 생활태도, 그리고 적당한 운동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이런 사람을 치료하는 대 원칙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이들의 건강뿐 아니라 인생자체가 밝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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