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행 대한항공 "고열 네살 어린이 살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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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가 고열로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어서 기수를 다시 인천공항으로 돌리기로 했습니다."

25일 오후 3시10분 인천국제공항을 떠나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향하던 KE017 여객기 승객들은 이륙한 지 10분쯤 지나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린이 승객의 생명이 위독해 회항을 결정했다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나왔기 때문이다.

승객 우모(33)씨와 함께 탑승한 이모(4)양은 항공기가 원주 상공을 지날 무렵 고열과 함께 의식이 흐려지는 '열성경련'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기장 이정훈씨 등 승무원들은 응급조치 후 탑승객 중 의사가 있는지 수소문했다. 다행히 한 의사를 찾았고, 그는 "이양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기장과 승무원들은 곧바로 회항 여부를 논의했다. 비행기를 다시 영종도 공항으로 돌려 착륙하려면 가득 채워진 연료를 버려야 하고, 승객들의 동의도 얻어야 하는 등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승무원들은 신속히 회항하기로 결정했다. 모든 결정은 환자가 발생한 지(3시20분) 10분 만에 이뤄졌다. 곧바로 안내방송을 한 뒤 회항 절차에 들어갔다. 어린아이의 생명이 걸린 일이라 승객들도 반대하지 않았다.

이 기장은 가득한 기름을 버리는 일에 착수했다. 이 기장은 우선 기름을 버릴 수 있는 강릉 인근 해상으로 기수를 돌렸다. 모든 항공기가 공항 이착륙 무게에 제한이 있는데 인천~LA 노선을 오가는 보잉 747기의 경우 최대 이륙 중량은 388.7t이나 최대 착륙 중량은 285.7t이다. 착륙 때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 기장은 인천공항에 착륙하기 위해서는 비행기 날개 부근에 실려 있는 100t가량의 기름을 버려야 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항공유는 바다 상공에 버려져도 워낙 휘발성이 강한 데다 미세 입자로 넓게 분사되기 때문에 바다에 떨어지기 전에 모두 증발해 해양 오염의 우려는 없다"고 했다.

기름을 버린 뒤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한 시간은 오후 5시였다. 착륙 후 이양은 공항 내 긴급 의료센터에 옮겨져 치료를 받은 뒤 정상을 되찾았다. 비행기는 급유한 뒤 오후 6시쯤 다시 LA를 향해 출발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인천공항에서 이륙한 항공기가 인천으로 회항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됐지만 승객의 안전과 인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회사 방침에 따라 신속하게 회항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이번 회항을 위해 버린 항공기 기름값은 4000여만원이라고 밝혔다. 여기에다 승객들의 연결 항공편 관련 비용을 합하면 모두 5000만원이 넘는 돈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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