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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머우 연출 오페라 '투란도트' 공연 첫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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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공연장에 들어선 관객들은 눈앞에 펼쳐진 세계 최대 규모의 초대형 무대세트에 압도돼 잠시 호흡을 멈췄다.

명조(明朝)시대의 베이징(北京) 자금성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장대한 건축물은 실내 무대에서보다 더 가깝게 다가왔다.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이 매머드 오페라하우스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창문으로 무대를 내려다보는 스카이 박스석을 오페라하우스의 발코니석에 비긴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이틀에 걸친 비 끝에 맑게 갠 5월의 밤하늘을 배경으로 자금성 태화전(太和殿) 지붕 위엔 둥근 보름달이 둥실 떠올랐다.

카를로 팔레스키가 지휘하는 1백30명 규모의 키예프 우크라이나 국립교향악단이 힘찬 팡파르를 울리자 관객들은 동화 속 환상의 세계로 점점 빨려들어갔다.

8일 막이 오른 야외 오페라 '투란도트'의 화젯거리는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대형 무대에서 그치지 않는다. 1년 전 붉은 악마의 함성이 메아리치면서 온 국민을 마음을 한데 모았던 역사적인 장소가 공연 무대로도 손색이 없음을 보여줬다.

국내에서 블록버스터 오페라 제작과 본격 야외 클래식 공연에 대한 전망을 밝게 해줬다는 점에서 올 클래식 공연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힐 만하다.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을 맡은 이번 공연은 1997년 자금성 공연의 확대판이다. 길이 1백50m, 높이 48m의 무대 세트의 중심축은 중앙에 자리잡은 길이 52m, 높이 16.5m의 태화전이다. 대부분의 연기가 이 건물을 중심으로 펼쳐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백40명의 합창단, 60명의 무용단, 2백50명의 연기자가 화려하고 정교한 의상을 입고 무대로 등장할 때, 오페라 공연이 아니라 실제 황실 행사를 보는 듯했다.

초대형 무대 때문에 출연자들이 왜소해 보이긴 했지만 환상적인 조명이 무대를 가득 채워주었고 첨단 음향기기로 확성한 아리아와 합창으로 무대가 꽉 찬 느낌을 주었다.

97년 자금성 공연에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드라마틱 소프라노의 자존심을 과시했던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칼라프 왕자 역의 테너 니콜라 조반나 카솔라는 드라마의 무게중심 마르티누치는 여전히 녹슬지 않은 황금빛 고음으로 차디찬 공주의 마음을 따뜻한 사랑으로 녹여냈다.

아쉬운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경기장 설계 때부터 크고 작은 공연.행사 무대로 마련된 본부석의 무대 프레임을 활용하면서 무대와 객석의 거리를 좁히는 데 주력하다 보니 무대 양 옆의 거리가 너무 멀어 '극장'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진 못했다.

세계 최고의 야외 오페라 무대로 손꼽히는 이탈리아 베로나 오페라처럼 전광판 쪽 스탠드를 무대로 활용한다면 음향이나 시야, 발코니석에서 오는 극장 특유의 분위기 등 인상깊은 야외무대가 될 것이다.

표가 거의 팔리지 않은 시야 장애석까지 포함하면 스탠드석 중 객석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리는 절반에 불과했다.

그라운드석 맨 앞쪽의 양옆에서 약간의 에코(메아리)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제외하면 객석의 어디서나 오페라 특유의 정교한 울림과 풍부한 사운드를 즐길 수 있었다.

무대와 의상으로 압도되는 것은 잠시일 뿐 역시 오페라의 감동은 음악에서 온다는 새삼스러운 진리를 주역가수들의 활약에서 재확인할 수 있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사진 설명>
푸치니 작곡의 '투란도트'가 8일 저녁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화려하게 개막, 1막이 공연되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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