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 무죄 받은 전 서울대 교수 "국가가 민사·행정 소송 비용 3억원 줘야"…사실상 패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중앙지법 민사29부(부장 박이규)는 전 서울대 교수 A씨가 국가와 박모(42)씨 등 경찰관 2명을 상대로 “소송 비용 3억원을 달라”고 낸 소송에서 “소송 비용에 대한 청구는 모두 기각했다”고 밝혔다. A씨는 여대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지만 무죄판결을 받자 소송을 제기했다.

2009년 4월 13일 여대생 B씨는 “A씨와 함께 술을 마시다 강간을 당했다”며 A씨를 고소했다. A씨는 고소장이 접수된 당일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출국했다. A씨는 일정이 끝난 후에도 귀국하지 않았다. 담당경찰관이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B씨와의 통신기록 요청을 늦게 했고, 이중 일부만 수사기록에 첨부하는 등 편파수사를 해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울대의 복귀 지시에도 응하지 않던 A씨는 결국 같은 해 9월 해임됐다. A씨는 출국 9개월만인 2010년 1월 귀국해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지난해 7월 “범죄사실을 입증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확정 판결을 받았다.

A씨는 무죄 확정 판결을 이후 자신을 고소한 B씨를 상대로는 민사소송을 내고, 서울대엔 해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지난해 12월 행정소송에서 “무죄확정 판결을 받았더라도 수사 회피 목적으로 국외로 도피한 행위만으로도 국립대 교수의 품위와 명예를 크게 손상시켜 해임이 정당하다”며 패소했다. 지난 4월 민사소송에서도 “B씨가 실제 상처가 있다는 진단을 받은 점, A씨가 장기간 해외에 머문 점, A씨의 어머니가 보상을 조건으로 한 형사합의를 제안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B씨 고소가 권리의 남용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잇따라 소송에서 패한 후 A씨는 이번엔 국가와 담당경찰관을 상대로도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A씨는 “경찰관의 편파수사로 귀국이 늦어지고 해임 당했다”며 “행정·형사·민사 소송비용 3억원을 물어달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담당 경찰관이 고의로 수사를 지연시킨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회신 받은 통신기록 중 일부를 누락한 것은 중대한 과실에 해당해 이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에 대한 위자료 5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송 비용에 대한 청구는 모두 기각시켰다. 재판부는 “A씨는 학생들 수업권을 침해해 해임된 것으로 보여 경찰이 통신기록을 누락하지 않았더라도 학교의 처분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또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에 대해서도 “경찰관의 불법행위로 없었더라도 소송이 진행됐을 것으로 보여 피해와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고 판단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