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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깊이보기 : IP TV 시대 오는가

"방송·통신 행복한 결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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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디지털 미디어의 총아인가, 기존 미디어를 잡아먹는 킬러인가. 인터넷방송(IPTV)의 도입 문제를 놓고 국내에서 찬반 논쟁이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다.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서둘러야 한다는 쪽과 현실 미디어 환경을 고려해 통합이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IPTV가 도입되면 기존 미디어계는 혁명에 준하는 엄청난 변화를 맞을 게 틀림없다. 한국 사회에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IPTV의 의미와 전망을 살펴본다.

'바보 상자'로 조롱받던 TV가 디지털 옷을 갈아입으면서 지능형으로 바뀌고 있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으로 속도도 눈부시게 빨라진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 IPTV가 있다. IP는 '인터넷 프로토콜'의 약자다. TV 수상기에 셋톱박스를 설치하기만 하면 초고속 인터넷망을 통해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다. 또한 비디오나 DVD를 대여할 필요없이 TV로 영화를 볼 수 있고, 게임과 노래방 등 다양한 서비스도 즐길 수 있다. 여기에 홈네트워킹.e-교육.홈뱅킹 등 다양한 응용 부가서비스도 제공된다. 한마디로 미디어 종합판이다.

수동적으로 TV를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고, 필요한 정보와 오락을 취사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방송사의 방송 시간에 맞춰 시청할 필요가 없고, 시청자가 시청 시간을 자유자재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다. 특히 최근엔 셋톱박스의 기술이 발전돼 IPTV를 통해 누구나 방송국을 개국할 수도 있다. 일본에 셋톱박스를 수출하고 있는 온타운의 김영민 사장은 "셋톱박스의 기술 진화로 방송 채널 10만 개 시대가 왔다"며 "인터넷 공간에서 누구나 블로그를 개설할 수 있듯 IPTV 환경에서는 누구나 개인 방송국을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인터넷.TV 포털을 넘어 미디어 포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성장 동력인가 거품인가=무엇보다도 IPTV는 통신사업자에게 매력적인 사업 영역이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수익성이 약화되고, 케이블사업자(MSO)들이 방송 프로그램을 무기로 인터넷.전화 사업에 진출하면서 통신사업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방송으로의 진출은 통신사업자에게는 신천지 개척이나 마찬가지다. 방송.전화.인터넷 등 통합형 서비스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KT의 심주교 상무는 '통신사업자 입장에서의 IPTV 사업과 정책 방향'이란 논문에서 "2006년부터 2012년까지 12조9414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를, 5조8493억원의 부가가치 창출을, 7만 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하는 파급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LG경제연구소는 "2009년까지 200만 명의 IPTV 가입자를 확보할 것"으로 예상한다. IPTV의 미래 전망이 밝을 뿐 아니라 IT 신산업의 성장 동력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IPTV 사업은 중복 투자로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가장 첨예한 이해 관계에 있는 케이블방송 쪽의 목소리다. 한운영 센터장(한국디지털케이블연구원)은 "IPTV는 광대역통합망(BCN) 사업과 중복된다"고 말했다. 태광.CNM.CJ케이블넷 등 복수 종합 MSO가 디지털멀티미디어센터(DMC) 설립을 통해 전화.인터넷.교육.VOD 서비스 등으로 디지털 환경을 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95년 케이블방송이 출현해 지상파방송과 경쟁했듯, 출범 10주년을 맞는 케이블방송사업자에겐 IPTV라는 막강한 경쟁자가 나타난 것이다. 기존 시장을 수성해야 할 케이블.지상파 방송사와 기존 시장의 포화로 새로운 수입원을 찾아야 할 통신사업자의 한판 승부는 불가피해졌다.

이해 관계가 충돌하면서 생존을 위해 그야말로 방송과 통신의 생사를 건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IPTV는 레드 오션인가, 블루 오션인가. 그 판단은 사업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결론 없는 지루한 공방만 계속=업계의 싸움이 좀처럼 결론에 이르지 못하는 가운데 정부 내에서 밥그릇 싸움이 한창이다.

디지털TV 전송 방식을 두고 길고도 지루한 싸움을 벌인 바 있는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가 이번엔 IPTV 규제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정통부는 "통신망을 사용하기 때문에 IPTV를 통신의 부가서비스로 봐야 한다"며 정통부가 관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방송위는 "IPTV는 별정 방송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방송법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할권 싸움이다. 이를 조정하기 위해 국무총리 산하에 '방송통신 구조개편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별 효과는 없는 듯하다. 따라서 민언련 등 언론 관련 시민단체와 언론학자들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방송통신 융합위원회'를 운영하자고 나섰다.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항이란 점을 강조한다. 결론 없는 공방만 계속되면서 학자와 시민단체 일각에선 책임론도 나오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인터넷 환경을 만들어 놓고도 업계의 갈등과 정부의 조정 능력 미흡으로 이제 일본보다 뒤처진 데 대한 불만 때문이다. 대통령이든, 정통부 장관이든, 방송위원장이든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자 국회에서 입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유승희 의원은 19일 국회에서 개최된 디지털미디어포럼에서 "통신.방송 융합 시대를 맞아 신규 서비스를 도입하고 규제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며 "의원 입법 발의 형태로 '정보미디어융합서비스법' 초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국회가 나서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콘텐트=케이블방송.지역 민방.위성방송 등 뉴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라는 말이 뒤따랐다. 그러나 황금알은커녕 오리알도 낳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따라서 IPTV에 대한 장밋빛 전망 역시 금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경북대 송종길(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위성방송과 마찬가지로 지상파방송의 협력 여부에 따라 IPTV 사업의 승패가 결정난다"고 전망한다. 아직 지상파TV 프로그램을 능가하는 콘텐트가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스카이라이프든, DMB 사업자인 TU미디어든 지상파 재전송에 목을 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상파방송의 콘텐트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승산이 없다. IPTV는 신규 시장을 개척하는 것 못지않게 새로운 콘텐트를 개발할 수 있는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기존 방송과 차별화된 '킬러 콘텐트' 개발이 승부수라는 것이다.

강원대 정윤식(신문방송학과) 교수 등 많은 전문가들은 "새로운 방송영상 콘텐트를 창출하려면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며 "IPTV 도입을 계기로 한국 방송영상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IPTV의 미래는 정부와 소비자의 선택에 달려 있는 셈이다.

김택환 <미디어전문기자·언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