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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파병」표면화…"이해득실을 따져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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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10일 레바논정부로부터 파병요청을 받았다고 공식 발표함으로써 그 동안 정부안에서만 은밀하게 논의되었던 파병문제가 국민적 관심의 차원으로 부상했다.
외무부당국자는 지난 6일 레바논의 「엘리·살렘」부수상 겸 외상이 문창화 레바논주재 한국대사를 불러 파병요청을 해왔다고 밝히고 이 요청에 대해 정부는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레바논의 파병요청은 지난 8일 외신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국내에 알려졌다. 그리나 이때 외무부는 『현재까지 레바논 정부로부터 공식요청을 받은바 없다』고 했는데 외무부가 거짓말을 해가면서 까지 부정한 것은 민감한 이해관계가 얽힌 이 문제를 신중히 검토해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이범석 외무장관도 국회에서 『이 문제는 국내·국제적으로 신중히 검토돼야할 문제로 현재 관련 부서와 신중한 연구검토 및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아직은 레바논으로부터 파병요청만 받았을 뿐 규모·시기·기간 등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아무런 시사가 없어 당장 결론을 내려야 할 정도로 시급을 요하지는 않는다.
정부는 현재 외무부의 실무적 차원과 장관급이상 전 정부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둘러싸고 바쁘게 움직이고있다.
외무부는 담당 국인 중동국 뿐 아니라 각 지역 국별로 파병에 따른 이해득실에 대한 검토를 진행중이며 해외공관에 훈령을 보내 주재국의 생각을 타진중이다. 또 국방관계자들도 별도의 검토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일에는 외무·국방장관을 포함한 고위회의가 열렸는데 대체로 결론의 방향을 유보하고 각국의 반응과 외교·군사·경제적 여러 문제점을 고려해 시간을 두고 신중한 검토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우리로선 같이 파병요청을 받은 여타 5개국의 반응도 살펴보아야 할뿐 아니라 강·원으로 나뉘어 있는 아랍각국의 이해관계, 이스라엘의 입장, 특히 이번 제의의 배경으로 알려지고 있는 미국과의 관계 등 외교적으로 만도 검토해야할 문제가 많다.
현재는 파병요청을 받은 5개국이 모두 신중한 자세로 부정적 내지는 유보적인 태도인 것으로 알려 졌다.
한 관계자는 레바논이 그 많은 나라가운데 한국에 파병을 요청한데는 전 주한미대사를 지냈고 다국적 평화군을 파견하는데 주역을 담당했던 레바논출신의 「하비브」특사의 아이디어가 작용한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의 파병을 지지한다』는 원칙론만 밝히고 있고 지난 3일의 「이글버거」 미국무성 정무담당차관의 방한도 파병문제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실제 레바논이 미국과 어느 정도의 사전협의를 가졌는지는 분명치 않다.
한국군의 파병규모 등 구체적인 요청은 없지만 평화유지군 규모를 현재 4천명에서 3만명으로 증강해야한다는 레바논 측의 주장으로 볼 때 우리측에 적어도 2천명 이상의 병력을 대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사가 있다.
파병에 대해서는 정가와 일반여론 뿐 아니라 정부안에서도 긍정론과 부정론이 아직은 엇갈려 있다.
긍정하는 입장은 이것이 우리의 국제적 지위와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계기라고 본다.
특히 대미관계를 놓고 볼 때 84년 미 대통령선거에서 「레이건」대통령이 중동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외교적 성과를 내놓고 재당선을 꾀하는 만큼 우리의 파병은 미 정부의 입장에 큰 플러스가 되리라는 판단이다. 그렇게 될 때 보다 긴밀한 한미간 협조체제를 통해 정치적·군사적 과실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현재 1백 50억 달러 규모로 예상되는 레바논 복구사업에 우리가 진출할 수 있는 유리한 발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파병요청이 아예 없었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한 소식통의 회의론처럼 부정적인 측면도 크다.
우선은 파병의 명분이다. 과거 월남참전 때 명분 때문에 우리가 시달렸던 경험이 있다. 레바논의 경우는 월남과는 다른 국제평화유지군이지만 그것이 유엔 등 국제기구로부터의 요청이 아니고 한 정부로부터의 요청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더구나 레바논사태가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싸움에서 뿐 아니라 국내 종교적·정치적 분쟁이란 측면이 크다는데 더욱 어려움이 있다.
국제평화군의 성격이 소위 「경찰」적 업무만을 수행한다고 하나 만일의 경우 전투가 발생할 경우 우리가 싸워야할 도덕적 근거를 어떻게 찾느냐도 큰 문제다.
또 파병에 따른 경비문제와 우리의 안보적 측면이 있다.
평화유지군은 파병국가의 자비부담을 원칙으로 하고있는데 개발도상국인 한국이 비용까지 부담하면서 파병한다는 데는 문제점이 있다. 그렇다고 미국 등의 지원을 받을 경우 대외 이미지에 오히려 손상을 입을 우려도 있다.
경비를 보전하는 방안으로 미국이 대한군사판매차관(FMS)등 우리의 안보지원을 강화해주는 방식이 일부에서 거론되고 있다.
우리의 외교노선은 비동맹 제 3세계와의 폭넓은 우호관계를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따라서 강·원을 포함해 전 아랍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려고 부심해 왔다. 우리의 레바논파병은 페르시아만 지역의 온건국가(GCC그룹)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지 몰라도 시리아 등 강경 국가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킬는지도 모른다. 이 경우 우리와 깊은 경제관계를 맺고 있는 리비아의 의향은 큰 변수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우리가 미국의 이익에 의해 파병한다는 오해가 생길 경우 제 3세계로부터 강대국에 종속되어 있다는 비난을 받을 소지도 깊이 고려되어야 할 문제점이다.
한마디로 이 문제는 다각적이고 신중한 대처가 요구되는 문제라는 인식이 요구된다.

<문창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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