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교·나의 스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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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57년 미 피버디대학에 유학을 갔다. 6·25가 끝난 지 몇해되지 않아 황폐하고 혼란한 한국유학생이 처음 접하는 미국명문대학의 분위기는 별천지 같은 것이었다.
자유와 평화와 번영이 넘쳐 흐르는 축복받은 땅.- 가난한 동방나라의 유학생은 착잡한 감회에 젖곤했다.
58년까지 2년 동안을 머물며 생물학을 공부했는데 피버디보다는 같은 시내에 있는 밴더벨트대학에서 주로 강의를 들었다. 미국에선 대학간 왕래가 자유로와 피버디대학에 적을 두고도 밴더벨트대학강의를 듣고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피버디와 나란히 테네시주 내시빌에 자리한 밴더벨트는 l901년 우리나라 유학생으로 윤치호가 첫 졸업한 인연을 가진 학교.
독일계 미국인인「프리아우프」교수를 만난 것은 그 대학에서다.
분류학이 전공이던 「프리아우프」교수의 학문하는 태도는 그대로 하난의 교본이었다. 독일인의 치밀함과 재주가 번뜩이는 천재형의 학자는 아니었지만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걷는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목표를 관철하고마는 노력형의 학자였다.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책을 읽으려 하지 말고 자연을 읽으라』(Read Nature not Book)였다.
남이 이미 재구성한 지식을 익히려 하지 말고 원본으로부터 직접배우라. 그리고 모든 진리는 철저한 검증을 통해 입증된 것만을 인정하라….
곁에서 보기엔 대단한 연구결과도 2, 3년 시간을 두고 완벽한 검증을 거친 다음에야 조심스럽게 발표하는 그 태도는 경탄할만한 것이었다.
가족과도 친해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가지말고 미국에 남아 같이 살자』는 간곡한 권유를 받기도 했다.
지금까지 학문하는 자세에서 나에게 행여 본받을 만한 것이 있다면 「프리아우프」교수의 영향일 것이다. 노상 그를 배우겠다고는 하면서도 발 밑도 못 좇는 형편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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