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수제품 책 만들어주는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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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김진섭(39) 책공방(www.bookworks.co.kr) 사장은 어린이들에게 '책 만들어주는 남자'다.

책은 보통 인쇄공장에서 대량생산되지만 김 사장의 책은 좀 다르다. 인쇄기로 찍어내는 책이 아니라 등사기와 잉크롤러 등을 이용해 책표지 디자인에서부터 종이 재질까지 개인의 취향에 맞춰 수제(手制)책을 만들어 준다. 책을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드는 것이다.

아이들의 반응은 좋다. 김 사장은 "그동안 수동적으로 책을 읽기만 하던 아이들이 직접 책을 만들어보면서 책의 소중함을 알고 친근감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동국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12년간 주로 여성 잡지에서 기자로 일했던 김 사장은 8년 전 유럽으로 출장을 갔다가 무릎을 쳤다. 일기 등 개인적인 글들을 책으로 엮어 만들어 주는 소규모 책공방이 많았다. 인쇄된 책을 읽기만 하는 게 아니라 손으로 직접 만든다는 발상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의 사업구상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차가웠다. 하루에도 수천, 수만 권의 인쇄된 책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누가 손으로 직접 만든 책을 사겠냐는 것이었다. 우선 인식 전환이 필요했다. 그래서 2000년 직접 '책 잘 만드는 책'이라는 단행본을 썼다. 이 책에 대한 호평에 힘입어 그는 2001년 창업에 나섰다. 집을 담보로 1억원의 자금을 마련했다. 서울 서교동에 단독주택을 개조한 60평 규모의 가게를 열었다.

사업은 초기부터 어려움에 부닥쳤다. 전단지를 뿌렸지만 손님의 발길은 뜸했다. 유럽식 전문 북아트(Book Art) 공방을 표방한 것이 너무 생소했던 것이다.

전략을 바꿔 아이들의 체험학습 쪽으로 타깃을 바꿨다. 수도권의 1000여 초등학교를 누비며 선생님을 설득했다. 처음엔 잡상인 취급하던 선생님들도 '외국에는 책 만들기가 정규과정에 포함돼 있다'는 설명을 듣고 차츰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특히 45인승 대형 버스를 개조해 찾아가는 출장 서비스를 시작한 점도 사업에 도움이 됐다.

요즘은 입소문이 퍼져 유치원을 비롯해 도서관.지자체.백화점 등에서도 방문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한 달에 10~15회 버스 출장을 나갈 정도로 사업도 안정됐다. 아이들 이외에 자기만의 책을 만들어달라는 수요도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가족이나 연인끼리 자기들만 공유할 수 있는 책.앨범.다이어리 등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많다. 현재 한 달 평균 매출은 출장 서비스를 포함해 3000만원 정도. 3명의 직원 인건비 등 비용을 제하고도 20% 안팎의 순익을 내고 있다. 김 사장은 조만간 '책 만드는 버스'란 브랜드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할 계획이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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