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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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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 우주인이 객석으로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3차원 아이맥스 영화 ‘스페이스 스테이션’. 아이맥스 영화가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스크린 표현력을 넓혀가고 있다.

19일 오후 서울 단성사 지하 2층 전시장. 독일 영화감독 로사 바바가 바쁘게 움직였다. 16㎜ 영화 '머신 비전 시커즈(Machine Vision Seekers)'의 설치작업을 끝냈다. 영사기 스위치를 올리자 '차르르르~' 예스러운 기계음과 함께 하얀 벽면에 화려한 영상이 펼쳐졌다. 인물도, 풍경도 없다. 컬러풀한 이미지에 영어 문장만 흘렀다. 영사기는 상하로, 또 좌우로 움직였다. 전시장 전체가 스크린이 된 셈이다. "이것도 영화예요"라고 묻자 감독은 즉각 "예스"라고 대답했다. 그는 "2차원의 평면에 갇힌 스크린을 3차원으로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급변하는 영화의 한 단면이다.

#1. 갤러리에서 영화를 보다

'머신 비전 시커즈'는 SF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문자'로 표현하며 지구촌의 난제인 이민.난민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감독은 "문자가 영상보다 힘이 강하다. 기존의 영화관습을 깨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머신 비전 시커스'는 서울영화제(9월 1~8일, www.senef.net)의 부대 행사로 열리는 '미디어 라운지'(25일~9월 12일)섹션에서 공개된다.

'미디어 라운지'가 열리는 곳은 극장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갤러리에 가깝다. 단성사 전시관, 인사동 쌈지길 등에서 '영화의 프런티어'를 일구는 작가들이 고루 소개된다. 전자음악의 역사와 특징, 그리고 문화적 의미를 6부작 영상에 담은 '팝 문화 선언', 영화 편집을 소재 삼아 실제 영화와 편집의 차이를 주목한 '전자 초상' 등 국내외 화제작이 일종의 설치미술 형식으로 상영된다. 일반 관객이 직접 오케스트라의 작곡가로 변신하는 '소리 발전소'나 프랑켄슈타인 같은 괴물도 만들어보는 '에이젠슈타인의 괴물' 등 관객 참여형 작품도 적잖다.

서울영화제 전성권 프로그래머는 "기존 영화의 이야기 구조를 파괴하는 동시에 필름이란 매체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실험적 작품을 골랐다"며 "영화에 대한 선입견이 없는 어린이들이 보다 즐겁게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클럽도 훌륭한 영화관이 된다. 간단히 술을 마셔도 되며, 댄스파티도 준비됐다. 다음달 8일 홍대앞 클럽 'O2'에서 열리는 '주크 박스 미드나잇'이다. 감각적 화면의 뮤직 비디오 74편을 볼 수 있다. 극장을 탈출해 클럽으로 이사 온 영상과 음악을 만끽할 수 있다.

#2. 더욱 작게, 더욱 크게

'엽기적인 그녀'의 곽재용 감독은 요즘 단편 '기억이 들린다'를 찍고 있다. 남자 친구가 기억은행에 맡겨놓은 기억의 일부를 여주인공이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특기사항은 10월께 극장이 아닌 KT 홈페이지에서 개봉한다는 것. 감독은 "디지털 HD영화에 실험적으로 도전했다"며 "휴대전화 개봉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영화의 개봉 창구가 극장을 벗어나고 있다. 특히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과 아이맥스 영화관의 약진이 주목된다. 각기 반대 방향에서 더욱 작게(DMB), 더욱 크게(아이맥스)를 노리고 있다.

'손 안의 극장'으로 불리는 DMB는 영화시장의 지형도를 뒤흔들 변수다. KTF.SK텔레콤 등 이동통신사도 최근 충무로에 속속 진입했다. 5월 본방송을 시작한 위성DMB인 TU미디어는 홈CGV가 제공하는 영화를 한 달 평균 70~80여 편 틀고 있다. 22일 현재 가입자 수는 13만여 명. TU미디어 김영 팀장은 "유료 주문형 채널 신설도 검토하고 있다" 며 "장기적으론 모바일 영화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크기 경쟁도 점화됐다. 최대 멀티플렉스 체인인 CGV는 연말께 서울 용산, 인천CGV 두 곳에 아이맥스 전용관을 연다. 서울 63빌딩에 있는 2차원(2D)극장이 아닌 특수안경을 끼고 보는 입체(3D)극장이다. 미국에서도 지난해 3D로 별도 제작된 '폴라 익스프레스'가 폭발적 인기를 끌며 아이맥스가 영화 배급의 '유망 창구'로 떠올랐다. CGV 이지연 과장은 "영상이 객석으로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모험 다큐멘터리 위주의 아이맥스가 상업영화로 진화하고 있다.

#3. 필름에서 디지털로

영화계는 '디지털 혁명' 중이다. 최근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가 디지털 버전으로도 상영된 건 작은 예에 불과하다. '스타워즈'시리즈로 HD영화의 역사를 새로 쓴 조지 루커스 감독은 이달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컴퓨터 그래픽 국제학술대회(시그래프)에서 "디지털 기술은 21세기의 예술형태"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시실리 2㎞'를 필두로 디지털 장편영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문화관광부도 24일 2009년까지 490억원을 들여 디지털 시네마 기술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디지털 영화는 '필름의 종언'과 통한다. 현재 국내에 디지털 영사기를 갖춘 극장은 8곳가량. CGV.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도 디지털 상영관을 계속 늘릴 작정이다. 영화 투자사인 CJ엔터테인먼트도 류승완.최동훈 등 감독 8명과 HD영화 제작을 계약하고, 11월 촬영에 들어간다. 할리우드에선 위성을 통한 지구촌 동시 개봉도 준비 중이다.

국내 최대 관객을 모은 행사 또한 인터넷 영화제다. 5월 시작해 다음달 8일 끝나는 서울넷페스티벌의 조회 수는 1000만 회를 훌쩍 넘어섰다. 부산영화제의 총 관객도 20만 명이 되지 않는다. 그만큼 영화가 사이버에 널려있다는 뜻이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로부터 시작된 영화는 필름이라는 헌 옷을 벗고 디지털이라는 새 옷으로 한창 갈아입는 중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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