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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활개치는 복부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돈 놓고 돈 먹기. 일확천금의 세계가 바로 투기의 세계. 돈 있는 곳, 금맥을 찾아 투기업자들은 바쁘게 움직인다.
지난 78년 부동산투기가 전국적 붐을 이뤘을 때 부동산투기업자들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졌던 복부인. 이들이 요즘 모처럼 제 세상을 만나 다시 한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새로운 부동산투기의 붐다운 서울 개포지구. 다닥다닥 붙어있는 크고 작은 복덕방마다 잘 차려입은 부인네들이 항상 자리를 잡고 있다. 얼핏보기에도 자기가 살집을 사거나 팔러온 사람들은 아니다.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순간 순간으로 변하는 시세. 이에 따라 「팔자」가 「사자」로, 「사자」가 「팔자」로 뒤 바뀐다.
하지만 복덕방에 나와 진을 치고 있는 복부인들은 사실은 소액전주. 진짜 거물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복덕방업자의 전화연락만으로 수억·수십억을 일시에 동원하는 막강한 재력을 과시한다.
개포지역은 복부인들이 오래 전부터 주목해온 곳이다. 고덕지구와 함께 서울의 마지막 남은 개발대상지로 주공·시영아파트, 그리고 굵직굵직한 민간아파트들이 속속 들어서기로 돼 있고, 부근의 남녀 중·고교학군이 좋은 점등 투자에 아주 유리한 지역으로 꼽히던 곳이었다.
그래서 투기업자들은 이곳을 노리고 부동산경기가 침체해 있을 때도 국민주택부금 및 재형저축통장, 그리고 주택청약예금통장들을 부지런히 사 모았다.
투기과열의 시작은 지난 6∼8월에 있었던 주공의 과천 2.3차, 개포 3차 분양 때부터이다.특히 개포의 경우 당시 분양되자마자 1백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부동산경기 활성화의 중심지로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지난 10월 중순 민간아파트로선 최초로 경남이 32, 45, 56평짜리 아파트 4백8가구를 분양하면서 복덕방·복부인들이 대거 개입돼 거액의 프리미엄이 붙기 시작, 최고 l천6백만원을 기록했다.
이어서 선경이 1천7백만원, 그리고 다음에 우성이 4천5백만원에 오르는 경이를 연출했던 것이다.
이번 개포지역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은 투기대상이 아파트 그 자체보다 예금통장쪽에 더 몰린 것. 5백만원짜리 0순위일 경우 통장하나에 최고 2천3백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었고, 최고 20여 개의 통장을 가지고 대규모 투기를 벌인 복부인도 있다는 얘기다.
예금통장일 경우 전매과정이 간단하며 세무조사 등 사후문제처리에도 별문제가 없어 훨씬「깨끗하기」때문. 그래서 요즘은 예전처럼 아파트를 수십 가구씩 한꺼번에 몰아 쥐고 투기를 벌이는 경우는 거의 없고, 아파트를 살 때는 기껏해야 1∼2가구가 고작으로, 두고봐서 여의치 않을 경우 스스로 들어가 산다는 각오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복덕방업자들의 얘기다.
지금 아파트마다 엄청나게 붙어있는 프리미엄도 예전처럼 당첨 후 거듭된 전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프리미엄을 붙여 산 통장으로 당첨돼 동 호수 결정에서 로열층을 잡았을 경우 제 마음대로 최고가를 불려놓은 것이란 것.
예를 들어 최고4천5백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었다는 우성아파트 65평형의 경우도 2천3백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은 통장을 사서 로열 층에 당첨된 사람이 곧바로 두 배의 프리미엄을 붙여 내놓은 가격이지 거래에 의한 가격이 아니라는 얘기다.
복부인 하면 바로 아파트를 연상할 정도로 아파트가 복부인의 투기주종으로 흔히들 생각하지만, 진짜 큰손에겐 아파트는 세무조사 등 당국의 규제가 많아 『골치만 아플 뿐 큰 재미는 못 보는』분야. 그들이 정말 노리는 것은 토지·임야·상가 등 좀 덩어리가 크고 승부가 큰 것들이다. 최근 수도권지역을 비롯. 지방각지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어쩌면 지난 77,78년 복부인들의 대규모 원정투기의 재판을 보는 느낌이다.
토지의 경우 우선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강남 변두리지역의 미환지 땅. 개포·일원·오금동 일대 미환지 땅은 최근 석달 동안 평당 7,8만원이 올랐어도 내놓을 물건이 없다.
고덕지구의 명일·암사동의 상가지역은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면 상가가 되리라는 기대에서 최근 한달 동안에 평당70만∼1백만원으로 두 배로 껑충 뛰었다.
지방의 경우는 수도권지역인 이천·반월·광주가 주요 대상. 광주는 서울에서 가까와 통근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인기를 얻어, 연초 평당 최고 14만원이던 것이 최근 20만원으로 올랐어도 살 땅이 없고, 반월의 임야도 최근 한달 사이에 50%나 급등했다.
이들 지역이 이처럼 땅값이 크게 오르는 이유는 지역개발등의 자체적 요인도 있으나, 아무래도 외부적 요인이 더 큰 듯. 최근 이들 지역에는 고급자가용 승용차를 탄 「서울손님들」의 왕래가 매우 잦다는 것이다.
부곡·단양·울진·백암등 관광지부근의 땅값도 최근 크게 상승하고 있는데, 서울의 복부인들이 대거 몰려가 가격을 조작했다는 소문.
최근 정부가 경기회복책을 잇달아 발표하자, 이를 근거로 복부인들이 마구 몰려 그럴듯한 소문으로 가격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70년대초 『서울사람들의 땅 아닌 곳이 없을 정도』였던 제주역에서도 그 당시 부동산매입에서 살아남은 남서부 일대에 최근 임야를 대상으로 마치 서울의 강남을 연상케하는 극심한 부동산투기 바람이 일고 있다.
지난 3개월 동안 남제주군 안덕면일대에서 무려 1백만 평 이상의 임야가 「서울 사람들」의 손에 넘어갔고, 작년에 평당5백원 짜리가 지금은 1천∼1천5백원으로 거래되고 있는 실정.또 같은 임야라도 바다가 보이는 등 전망이 좋은 곳이면 싯가의 3∼4배 되는 값으로 팔리고 있다.
이들이 이처럼 임야에 몰리는 것은 소유권이전등기가 손쉽기 때문. 개중에는 다른 사람 명의로 위장등기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바야흐로 복부인의 망령은 다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기활성화의 일환으로 정부당국이 시도한 주택건설 경기촉진에 불청객이 찾아온 것이다. 아니 어쩌면 정부가 그렇게 되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익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찾아든다. 투자가치 있는 곳에 투자해서 이익을 남기는 것을 탓할 순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의 행위가 투자 아닌 투기라는데 있다.

<정우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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