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열심히 일하는데 월급은 왜 안 오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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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월급쟁이 자본론
고구레 다이치 지음
오시연 옮김, 중앙북스
220쪽, 1만3000원

『자본론』이라니. 일단 지루해 보인다. 내 월급에 마르크스 이론을 대입시킨다? 뭘 그렇게까지.

질문을 바꿔보자. ‘당신은 열심히 일하는데 왜 월급은 그대로인가.’ 이제 귀가 솔깃해진다. 일의 양은 두 배가 된 것 같은데, 월급은 오르지 않았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규칙이 『자본론』에 들어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상황을 바꾸는 비책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우선 노동력도 상품이다. 그렇다면 상품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마르크스는 ‘가치’가 결정한다고 했다. 상품을 만드는 데 드는 요소의 총합이다. 예를 들면 같은 카레라도 30분 동안 끓인 것과 3일 동안 공들인 것은 가격이 다르다. 노동력의 값도 이렇게 결정된다. 직업을 얻기 전에 얼마나 오래 공부했는가(교육훈련비), 일을 하기 위해 밥 먹고 잠 자는 데 얼마가 드는가(식비·주거비) 등이 월급을 결정한다.

그렇다면 당신이 일에 바친 시간, 얻어낸 성과는 월급을 올릴 수 있을까. 여기서 시간·성과는 마치 주스 한 잔이 소비자에게 주는 ‘사용가치’와 같다. 사용가치는 소비자가 얻는 만족감이다. 아침에 상쾌하다가도 저녁에는 신맛이 느껴질 수 있다. 사용가치는 가격을 조정할 뿐, 시세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열심히 일한다고 월급을 더 받는 것은 아니다.

이제 충격 받았을 독자를 진정시킬 타이밍이다. 그렇다고 직장에서 놀면 안 된다. 노동력이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용가치가 있어야 한다. 가치만 있고 사용가치가 없으면 고용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오래 공부한 사람이 고용주에게 성과를 내겠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면 취직할 수 없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마르크스의 개념을 빌려 월급쟁이의 아픈 곳을 찌른다.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은 ‘당신이 월급보다 더 일한 만큼이 기업의 이익’이란 설명으로 바뀐다. 또 잉여가치의 감소 이론은 ‘기업이 월급을 안 올려주는 건 필연적’이라는 설명으로 풀이된다.

 저자는 마르크스 이론으로 자본주의를 끌어내리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체제 안에서 잘 살 궁리를 마련해본다. ‘나만의 차별화된 가치를 확보하라’는 결론이 좀 뜬구름 같긴 하다. 그래도 내 월급봉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은 맞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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