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서 제대하면 프로팀진출 박철순에 도전해보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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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5관왕이라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팬이 없다는 쓸쓸함밖에 느낀 것이 없읍니다.』 지난달 29일 폐막된 82년도 실업야구에서 우수투수·최다승(8승)·최다구원(5게임)·방어율 (1·85)등 투수부문을 모두 휩쓸면서 최우수선수상까지 5관왕이 된 김시진(25·경리단) 투수는 오히려 차분한 심정이다.
『실업야구가 프로야구 탄생으로 명실상부한 최고봉의 야구가 되지못하고 있습니다. 또 우수선수들이 많이 빠져나간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저의 영예는 스스로의 좌절을 이겨냈다는데에 조그마한 만족밖에 없습니다.』
대구상고와 한양대시절 최동원·김용남 (해태) 과 함께 국내야구를 풍미하던 김시진은 81년 대학졸업을 앞두고 오른쪽 어깨 근육파열로 투수로서 폐인이 됐다며 모든 실업팀에서 외면을 당했다. 취업을 못한 김은 할 수 없이 군에 입대, 그를 외면한 실업팀들부터 5관왕을 따내고 만 것이다.
5관왕의 영예는 78년 경리단의 이선희(삼성)에 이어 두번째. 김은 한국이 우승한 제27회 세계아마야구선수권대회에서는 첫날 이탈리아전에 등판했으나 2-1로 패배, 패전투수가 되는등 화려한 성적은 올리지 못했다.『야구에 대한 제 꿈은 프로야구의 본고장인 미국이나 일본에 진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국내프로야구에 진출, 박철순의 기록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내년3월 제대를 앞두고 삼성과 입단교섭이 오가고 있는 김은 조건만 맞으면 곧바로 입단, 아마에서 맺힌 응어리를 프로에서 풀겠다고 벼른다.
189 cm, 75kg의 당당한 체격.
최근 프로 데뷔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자신의 주무기인 슬라이더와 싱커외에도 비장의 무기로 포크볼(무회전의 볼로 타자앞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특징)을 개발하는데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고.
3일부터 11일까지 일본 오오사까·교오또등에서 벌어지는 한일실업친선6차전에서 새로운 구질을 선보이겠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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