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대통령 시대의 역설 … "경찰 총 맞을 가능성 백인의 21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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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 사태는 오바마 시대의 종언을 선언한 사건이다. 희망으로 시작했지만 절망으로 끝났다. 짐 크로우(인종차별법) 사법제도는 흑인에게 정의롭지 않으며, 가난한 흑인에겐 더욱 그렇다.”

 미국의 흑인 지성을 대표하는 코넬 웨스트 프린스턴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26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무장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을 사살한 백인 경관이 불기소 평결을 받은 데 반발한 시위가 확산된 상황에 대한 진단이다. 그리고 9일 뒤, 흑인 에릭 가너를 체포하다 목 졸라 숨지게 한 백인 경관 역시 기소되지 않았다. 흑인들은 또 다시 정부에 정의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절망에 빠졌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했을 때 기대는 최고조에 달했다. 인종차별 철폐 후에도 남았던 차별과 분열이 종지부를 찍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재임 6년째, 흑백 갈등은 어느 때보다 깊고 격차는 크다. 공권력에 의한 차별은 고착화됐고 경제·교육 등에선 50년 전과 다를 바 없이 차이가 벌어진다. ‘신(新) 인종주의’라고 일컬어질 정도다. 독일의 슈피겔은 이것이야말로 최초 흑인 대통령이 직면한 비극이라고 전했다.

 흑인들이 가장 분노하는 건 인종 편견으로 작동하는 공권력이다. 미국에서 젊은 흑인 남성이 경찰에 사살될 가능성은 젊은 백인 남성의 21배에 이른다. 최근 클리블랜드 경찰은 장난감 총을 든 12세 소년을 사살해 논란이 됐다. 경찰이 흑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 과잉 대응하는 것이다. 흑인들은 이런 백인 경찰을 인종차별주의자·살인자로 여긴다. 서로를 적대시하는 악순환이다.

 경제적으로도 열악하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11년 흑인 가정의 연평균 소득은 백인 가정보다 2만7000달러(약 3000만원) 적다. 빈곤층 비율도 백인은 10%지만 흑인은 28%나 된다. 나아질 가능성도 적다. 계층 이동을 가능케 하는 교육에서 격차가 줄지 않기 때문이다. 올봄 미 교육부가 공립학교 9만7000곳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흑인 학생이 정학·퇴학당하는 비율은 백인보다 3배 높았다.

 흑인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방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요에 휩싸인 퍼거슨시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채 기자회견으로 “자제해달라”고 요청한 것에 대해선 워싱턴포스트 등 언론도 비판적이다.

 올 초 미 의회 연두교서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기회의 평등을 역설했다. 그는 오랜 기간 실업 상태인 시카고의 백인 여성과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이주한 17세 여학생 사례를 예로 들었다. 흑인들이 ‘우리의’ 대통령이라 여겼던 그가 흑인이 겪는 불평등은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일각에선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 초의 ‘실수’ 때문에 몸을 사린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그는 2009년 경찰이 하버드 대학의 흑인 교수 헨리 제임스 게이트를 범죄자로 오인, 체포한 사건을 두고 “경찰이 어리석게 행동했다”고 말해 비판을 받았다. 이후 인종 관련한 발언에 조심하게 됐다는 것이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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