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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DLS 사상 첫 '녹인'구간 진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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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연초만 해도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가던 유가가 60달러대로 떨어지면서 관련 상품 투자자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당장 손실 걱정을 하는 건 원유를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결합증권(DLS)이다. 현재 WTI와 브렌트유를 토대로 설정된 DLS 잔액은 약 1조2000억원 정도다. 주식에 비해 변동성이 커서 지수형 ELS보다 높은 수익률을 노리고 투자한 이가 많았다.

 금융위기 이후 유가는 크게 보면 70~110달러 사이의 박스권을 움직였다. 덕분에 원유 DLS는 꾸준한 수익을 냈다. 연초만 해도 대부분 전문가들은 올해 글로벌 경기가 살아나면 석유 소비가 늘어나고 유가가 조금씩 오를 거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공급과잉으로 유가가 폭락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삼성증권이 지난해 2월과 올해 4월 발행한 DLS 3종은 최근 원금손실 발생구간(녹인 구간)에 진입했다.

 DLS가 녹인 구간 밑으로 내려갔다고 해서 바로 손실이 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만기 때까지 유가가 일정 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경우 큰 손실이 나게 된다. 국내에서 발행된 원유 DLS가 녹인 구간에 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 증권사 DLS 담당자는 “최근 DLS 환매 여부를 묻는 상담 건수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유가가 더 떨어질 것 같다면 중도환매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유안타증권 이중호 연구원은 “만기가 얼마 남지 않은 DLS는 환매를 통해 손실을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만기가 넉넉하더라도 유가가 더 내려갈 것 같다면 환매를 고려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환매할 때 원금의 5%에 가까운 수수료를 물어야 한다.

 유가 하락으로 MLP 펀드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셰일가스 파이프라인·저장소 등을 운용하는 마스터합자회사(MLP)에 투자해 배당과 시세차익을 노리는 펀드다. 올해 초 한국투신운용과 한화자산운용이 관련 상품을 출시해 약 1800억원을 끌어모았다. 이들 펀드의 설정 후 수익률은 8~10%로 선전하고 있지만 계속된 유가 급락으로 최근 1개월 수익률은 -5%에 가깝다. 그러나 해당 운용사는 일시적인 부진이라고 해명했다. 한투운용 최재혁 매니저는 “MLP는 배당수익률이 연 5~6%에 달하는 데다 셰일가스 생산단가가 떨어지고 있어 유가가 50~60불대로 내려가도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가 하락은 석유가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산유국 증시에도 큰 타격을 입혔다. 대표적인 나라가 러시아다. 러시아 증시는 서방 경제 제재와 저유가가 겹치면서 올들어 35% 하락했다. 루블화 가치는 60% 이상 폭락했다. 국내에 설정된 러시아 펀드 역시 연초 이후 평균 28%의 손실을 봤다. 유가 하락이 원자재 시장 전반으로 확산될 경우 브라질 펀드도 무사하지 못하다. 국내에서 판매 중인 브릭스 펀드는 올해 0~3%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선전에도 러시아·브라질 증시가 발목을 잡았다. 한 브릭스 펀드 매니저는 “원자재 가격 약세로 브라질·러시아 증시가 추가 하락할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이라도 환매한 뒤 다른 상품으로 갈아타는 게 나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저(低)유가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공급과잉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을 뺀 다른 나라의 경기가 부진해 수요가 단기간에 회복될 가능성도 크지 않다. 하나대투증권 고은진 연구원은 “유가가 단기적으로는 60달러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70달러 내외에서 거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신증권 오승훈 투자전략팀장은 “원유 소비가 살아나려면 중국의 추가 금리인하와 유럽 경기지표 개선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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