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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1백만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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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 문중이 우수하다는 것은 첫째 숫적으로 번성해야하고 둘째 질적으로 뛰어나야하며 세째 국가민족에 보람있는 일을 했을 때이다.
이런점에서 파평윤씨는 시조득성이래 1천여년동안 숱한 명장·충신·명현들이 혜광을 비추었고 오늘에 이르러 1백만명의 문중식구를 거느린 인구순위 8위의 일대거족이라고 할수있다.
미국하버드대 「에드워드·W·와그너」 박사와 전북대 송준호교수가 지난79년 조사한 조선5백년동안의 과거급제자 본관별 분석에 따르면 문과급제자는 모두 1만4천6백24명으로 이중 파평윤씨는 전주이씨 8백44명에 이어 4백18명으로 2위를 차지하고있다.
국혼가문으로는 청주한씨 5명에 이어 여흥민씨와 함께 4명의 왕비를 배출했고 연산군 생모인 함안파 1명까지 추가 한다면 한씨와 맞먹는 수다. 정승수로는 l백2씨족 총3백65명중 전주이씨 22명, 안동김씨 19명, 동래정씨 13명, 청주한씨·여흥민씨 12명 다음에 11명으로 7위를 차지하고있다.
파평윤씨의 위광은 문숙공 윤관에서 시작된다. 그는 고려 중엽의 문무를 겹비한 영걸.
「삼한중보」 「해동중보」 「동국통보」등 동전을 처음 만들어냈으며 1104년 여진족이 침입했을 때는 병마도통사로 30만대군을 이끌고 두만강건너 7백리까지 진격, 고구려의 옛강토 만주땅에 정계비를 세웠다.
장군의 아버지는 문정공 집형이요 어머니는 신라 경순왕 김전의 손녀. 그역시 파평현에서 태어나 오늘의 파주땅은 파평윤씨들에겐 영혼의 고향이요 성지인 셈이다.
어려서부터 시재에 비범해 나이 일곱살에 뽕나무를 글제로 하여 지은 시는 오늘도 세인을 놀라게하고있다.
- 뽕잎은 누에를 길러/추위를 막게하고/가지는 굳센 활로/오랑캐를 쏠수있다/이름은 비록 초목이나/참으로 국보일세/베거나 자르지 말라고/아이들에게 타일러야 되리.
여조에 이어 조선에 들어와 태조∼명종조에 세력을 떨쳤고 주로 판도공파(승례)와 소정공파(곤)에서 대대로 고관 및 학자를 배출, 이 두파의 후손이 가장 번창했다.
판도공파는 아들대에서 다시 갈리며 그중 정정공파가 유명한 「대윤」 「소윤」 집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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