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이 있는 책읽기] 안락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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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안락사(euthanasia)라는 말은 '잠자는 것 같은 평화로운 죽음'이라는 그리스어에서 왔다. 임종을 눈앞에 둔 환자가 직접 안락사를 희망하거나 무의식 상태의 회복 불가능한 환자를 두고 가족이 안락사를 원할 때 의료진은 윤리적 고민에 빠지게 된다. 130여 명의 환자를 안락사시켜 '죽음의 의사'로 불리는 잭 카보키언 박사는 '삶의 마지막 고통을 호소하는 인간에 대한 연민' 때문에 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네덜란드는 철저한 제한을 두고 안락사를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나는 내 생명을 끊을 권리를 갖고 있는가? 누가 과연 내 삶의 남은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가? 죽음보다 못한 삶이 있는가?

'괜찮을 거야'(브리짓 페스킨 글, 조현실 옮김, 문학과지성사, 8500원)는 안락사를 다룬 동화다. 외할머니를 무척 사랑하는 나탈리는 우연히 홀로 방치된 중증 치매 할머니를 발견한다. 그의 처절한 고통을 목격하고 가슴 아파하던 나탈리는 학교 작문 시간에 노인의 품위 있는 죽음을 돕는 안락사 대책을 제안한다. 할머니에 대한 깊은 사랑에서 비롯된 주장이었지만, 엄청난 오해와 파장을 불러온다. 선생님은 '노인에 대한 사랑이 없는 문제아' 나탈리를 구제하는 차원에서 노인 문제에 대한 취재 기사를 써오라는 벌을 내린다.

"이 세상은 젊은 사람들, 늙은 사람들, 아픈 사람들, 건강한 사람들 모두를 위해 있는 거야. 네가 아무리 특별한 사람이라 해도 다른 사람을 죽게 할 권리는 없는 거야"라는 선생님의 말은 안락사 반대론을 정확히 대변한다. 그래도 나탈리의 고민은 쉽게 잦아들지 않는다. 세상이 가난하고 늙고 병든 사람들의 마지막 몸부림조차 외면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회복 불가능한 환자에게 생명 연장 치료를 중지하는 정도의 소극적 안락사는 받아들이는 나라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가난하게 힘겨운 삶을 꾸리는 사람들이 오히려 가장 값싼 치료방법으로 '안락사'를 선택할 가능성은 없을까? 복지정책을 보완하지 않고 안락사를 허용한다면, 사회가 그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닐까?

김지은(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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