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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자! 이제는] 12. 금융 유관 단체들 바뀌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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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정부와 감독 당국이 미리 생각하는 내용을 뒷받침하는 심부름꾼 역할을 하고 있다."(금융연구원 A연구위원)

"정부 금융정책에 비판적인 친시장적 코멘트를 했다가는 내부에서 사실상 인민재판을 당할 수도 있다."(금융연구원 B연구위원)

금융연구원의 박사들은 은행산업 발전을 위해 은행 돈으로 설립.운영되고 있는 금융연구원의 현주소를 이같이 자체 진단한다. 은행 발전을 위해 여론을 선도해야겠지만, 정부의 눈치나 보는 등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의 표현이다.

회원사들의 돈으로 운영하는 금융 유관단체들이 회비는 꼬박꼬박 거둬가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은행연합회는 최근까지 재정경제부 장관이 사용하도록 서울 명동의 금싸라기 땅에 들어선 빌딩의 50평 규모 사무실을 무료로 제공하기도 했다. 이 방은 당초 은행장들이 쓰도록 돼 있었다.

회원사보다 정부 당국을 끔찍이 챙기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회원사들은 "회비가 아깝다"며 불만이다. 이들 협회는 예산의 90% 안팎을 회비로 충당한다.

<표 참조>

올해 300억원가량의 예산을 쓰는 증권업협회는 최근 장세가 좋아 회비가 넉넉히 걷혔다는 이유로 회비의 징수비율을 10% 깎아줬다. 증권사들은 맡겨놓은 돈 찾듯 회비를 징수하던 옛 관행에서 탈피한 조치라며 환영하고 있지만 협회의 역할에 대해선 여전히 불만이다. 한 증권사 사장은 "자율규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요구하는 자료만 많아 금감원과 별도로 상전만 하나 더 있는 셈"이라고 불평했다.

보험협회.여신금융협회.저축은행중앙회.자산운용협회 등 다른 금융 관련 유관단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 전직 은행장은 "은행연합회만 봐도 LG카드와 하이닉스의 부실을 처리할 때 본 것처럼 은행 간 상충하는 이해를 조절하는 기본 역할조차 쉽지 않을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여신협회도 2002년 하반기 카드사들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과당경쟁 자제 요청이 있은 뒤 회사별 실무자 회의를 주관했지만 한 달이 넘도록 초안조차 만들지 못했다. 협회의 자율규제 기능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금융감독위원회는 금융 관련 협회가 국가에서 위임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기로 했다. 협회의 공익성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정부 스스로 고칠 문제점도 있다. 이들 협회가 관청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금융상품 인허가 규제권을 과도하게 행사해서는 안 되며, 낙하산 인사도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증권업협회 부회장은 재경부 출신이 독차지하고 있으며, 증권사 회비로 운영되는 증권선물거래소 본부장.감사 자리 중 3개도 재경부와 감독원 출신이 차지했다.

유관 단체들도 스스로 제몫을 다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금융관계자들은 말한다. ▶회원사 공동이익을 추구하고▶관련 산업을 발전시키며▶업계를 자율적으로 감시하고▶고객을 보호하며▶시장 연구 및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한 은행장은 "정부는 시장의 자율성을 더 보장해 주고, 협회는 회원사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호.김준술 기자

<글 실은 순서>

1. 엔화 스와프 예금 이자세 논란 (6/29 3면)

2. 송금액 따라 다른 이체 수수료 (6/30 3면)

3.'일단 팔고 보자'보험 여전 (7/4 3면)

4. 갈 길 먼 은행 친절서비스 (7/5 3면)

5. 신뢰 안 가는 애널리스트 주가 전망 (7/8 6면)

6. 공염불 된 '목적세 폐지'(7/14 3면)

7. 투자자 애태우는 증시 공시 (7/18 3면)

8. 부담금 종류 무려 102개 (7/29 4면)

9. 금융상품 베끼기 여전 (8/3 4면)

10. 특별하지 않은 특소세 (8/6 8면)

11. 부실 '기술보증기금'살리기(8/16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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