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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세 장애 딸 50년 돌본 '101살 엄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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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불쌍한 딸을 위해서도 오래 살아야지, 내가 세상을 뜨면 혼자서 어떻게 살겠어."

101세의 박옥랑(朴玉郞.광주시 북구 우산동 주공아파트) 할머니-.

자손들의 극진한 봉양을 받아도 모자랄 나이에 몸이 불편한 68세 된 딸을 돌보느라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다. 딸 조의순(趙義淳)씨가 전신마비 상태로 누워 있기 때문이다. 이들 모녀는 현재 광주시내 13평짜리 영구 임대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있다.

朴씨에게 불행이 찾아든 것은 1939년.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朴씨가 출근한 사이 가정부가 업고 있던 네살배기 딸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머리와 목을 심하게 다쳤다. 그 뒤 딸은 불구가 됐다.

朴씨는 고개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딸을 들쳐 업고 용하다는 병원.한의원.침술원 등을 찾아다녔지만 허사였다. 그 뒤부터 딸은 방에 누워서 천장을 보며 살아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마저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가버렸다. 朴씨는 딸을 언니 집에 맡기고 학교에 계속 나갔다. 별다른 생계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1953년 전남 나주시 영산포여중에서 30년의 교사생활을 마감했다.

"딸의 상태가 악화된 데다, 생업이라는 핑계로 아픈 딸을 혼자 방치했다는 생각이 퍼뜩 든 거죠."

교직을 그만둔 뒤 朴씨는 딸에게 글 공부를 시켰다. 종이에 글을 써 보이며 한글은 물론이고 한자까지 가르쳤다. 학교 교과서와 문학서 등도 읽어줬다. 딸은 금방 글을 깨우쳤다.

때로는 시도 읊조렸다.

몸을 움직이지 못할 뿐 머리는 영리했다고 朴씨는 말했다.

'얄미운 행복/어느 곳에 숨었는지/저 산 넘어 숨었을까/저 바다 건너 숨었을까//저마다 너를 찾아 헤매어도/얄미운 행복은 이리저리 피해다니고…'.

딸이 몇년 전에 지은 '얄미운 행복'이란 시의 일부다. 어렵게 한마디씩 뱉어내는 시구를 어머니가 노트에 받아 적은 것이다.

딸의 손발 노릇을 하느라 늙을 틈도, 아플 여유조차 없었던 朴씨도 얼마 전부터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기억력도 크게 떨어졌다.

朴씨는 "딸은 나한테 몸을 기대고, 나는 점차 흩어지고 있는 정신을 딸에게 맡기고 사는 셈이죠"라며 웃었다. 그녀는 자신이 저 세상으로 간 뒤 딸이 어떻게 살지를 생각하면 아득하다고 했다.

"어미로서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되겠지만 내가 세상을 등질 때 딸 애도 함께 갔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아요."

국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朴씨는 정부에서 매달 52만원씩 나오는 돈을 아끼고 아껴 한 달에 몇만원씩이라도 꼭 저축을 한다. 자신이 죽은 뒤 딸 혼자 살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에서다.

趙씨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분이 나의 어머니"라며 "오늘까지 산 하루 하루가 모두 어머니의 덕"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朴씨가 사는 아파트에 간병 봉사를 하러 다니는 유상엽(44.여)씨는 "할머니는 딸을 돌봐야 한다는 정신력 때문에 건강하게 사시는 것 같다"며 "이들 모녀를 볼 때마다 모정(母情)은 위대하고 지고(至高)하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광주=이해석 기자 <lhsaa@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 <yks23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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