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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대입 수능 개선을 위한 세 가지 제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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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박도순
고려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필자는 1993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최초로 도입할 때 초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을 지냈다. 이런 점에서 올해 수능이 또다시 여론의 도마에 올라 가슴이 아프다. 지난해에 이어 출제 오류가 문제가 됐고, 주요 과목인 영어와 수학B의 만점자가 역대 가장 많이 나와 난이도 조절 실패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실력이 좋아야 하는 게 아니라 실수를 안 해야 잘 보는 시험이 과연 변별력이 있느냐는 비난이 일고 있다.

 수능의 장기적 개선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학입학전형제도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를 전망해야 한다. 그러나 대입제도의 변화 모습까지 상정해 수능 개선 방향을 논의하는 것은 수능 출제의 오류로 인해 제기되고 있는 현안 해결에 당장 도움이 안 된다. 따라서 우선 현행 입시제도의 틀 속에서 몇 년 이내에 바꿀 수 있는 개선 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수능을 교과별 학력검사라는 현재의 성격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현재의 수능은 학생생활기록부의 교과 성적보다 대학 입학 성적의 예언력이 뒤지면서 학생부와 거의 같은 내용을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학생부와 면접이 중요한 전형요소로 이뤄지고 있는 현행 제도 속에서 수능의 현재 성격을 유지하는 것은 전형요소가 중복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따라서 수능의 성격을 교과별·계열별 학력검사 형태가 아니라 대학 입학에 관한 일반적성 시험에 가까운 보편적 능력 평가로 전환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현재의 불합리한 EBS 연계 출제 문제는 해소될 것이다.

 둘째, 수능 체제를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꿔 5단계 정도의 최소 기준(합격-불합격)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체제를 바꿔야 한다. 시험 형태에 주관식 문항도 점진적으로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이는 수능의 결과를 자격 요건으로서만 활용한다는 뜻이다. 모집단위별 또는 대학별로 일정 기준 점수 이상을 요구하고 그 이상을 받은 수험생만을 대상으로 다른 전형 기준에 따라 학생을 선발한다는 의미다. 특히 창의성 교육에 기여하기 위해 현재의 선다형 시험 형태에서 주관식 시험 형태의 평가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수능의 가장 큰 결함이 선다형 형태의 시험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주관식 형태의 시험을 추가하는 것은 수능의 커다란 약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국가 수준의 시험에서 주관식 형태를 포함시키는 것은 비록 채점에 어려움이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다.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주관식 시험에 대한 기계적인 채점 방안이 이미 미국에선 실용화 단계에 와 있다. 우리나라도 상당 수준의 연구가 이뤄지고 있어 주관식 문항을 부분적으로 포함시키는 게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 수능의 절대평가 체제로의 전환은 수능의 의미 없는 점수 변별력을 회복시킬 수 있다. 특히 선시험-후지원의 현행 체제에서는 수능의 상대적인 변별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절대평가는 수능을 여러 차례 시행하는 것을 쉽게 만든다. 수능의 점수 한계를 극복하고 대입에 학생부의 활용을 보다 극대화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현행 수능에서는 매년 상대적인 변별력을 위한 난이도에 온 신경을 쏟게 된다. 절대평가를 하게 되면 난이도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사실 수능 결과를 지금같이 상대평가로 한다는 뜻은 수능 결과에 따른 학생 서열화를 강조하는 것이다. 수능에 의한 한 줄 세우기를 통해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수능 점수가 대학에 다녀야 할 학생을 정확히 구별해 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대학 교육을 받아야 할 학생을 학업 능력으로만 가려낼 수 없을뿐더러 수능 점수로는 학업 능력마저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 수능 결과는 학업 기초 능력을 가려내는 데 부분적으로밖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점수에 불과하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셋째, 수능 문제를 문제은행식으로 출제함으로써 문제의 일반적 수준과 적합성을 높이고, 출제 오류를 최소화해야 한다. 수능 평가가 앞에 언급한 것처럼 ‘공통 기본 능력’을 중심으로 이뤄진다면 교육 과정의 변화에도 비교적 덜 민감하게 된다. 오랜 준비기간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문제은행식으로 바꾸면 출제 문제의 축적이 쉬워지고, 자주 되풀이되는 출제 오류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빠른 시간 내 수능의 성격에 대한 확실한 변화가 이뤄진다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이를 위한 집중 투자가 장기간 진행될 때 가능하다. 특히 대입에서 수능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수년 안에 대학입시 경쟁이 최소화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문제은행을 통한 출제는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수능 개선을 위한 본질적인 방향은 아니지만 이처럼 수능이 개선된다면 국가·사회의 침체와 갈등을 초래하는 사교육비의 과잉 지출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것이다. 중등학교 교육이 입시의 영향에서 지금보다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또 과도한 경쟁과 서열화가 가져다주는 불합리한 교육 풍토가 부분적으로나마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도순 고려대 교육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