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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번 장모님 제사엔 내가 갈께|강연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오늘이 엄마 제사날인데…. 』
친정엄마 제사날과 시할머니 제사 날자가 얄궂을 정도로 나란히 연이은 달력을 들추며 말끝을 흐리는 나를 보고 그이는 어쩐 일인지 『염려마, 장모님 제사엔 내가 갈께.』하고 선픗 대답했다.
그런 그이가 얼마나 고맙던지.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지더니 눈물이 핑 돌았다.
「사위 사람은 장모」라고 했던가?
처가에 다니러 가면 사위왔다고 버선발로 반기며 뛰어나온다는 그 장모를 불행하게도 그이는 얼굴도 보지 못했다.
서른셋에 혼자 되셔서 스무해란 긴 세월동안 3남매를 키우느라고 고생하시던 엄마가 중풍으로 허무하게 세상을 버리신 것은 막내인 내가 대학졸업을 반학기남긴 초가을이었다.
4계절 중에 가장 풍요하다는 눈부신 가을이 열리는 것을 나는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같은 짙은 외로움으로 떨며 맞았다.
그이 역시 대학졸업반 가을에 엄마를 병으로 잃었다는, 그래서 흡사한 껍질속의 쌈동밤처럼 똑같은 외로움에 강한 공감을 느낀 그이와 나는 우리의 만남을 숙명처럼 받아들였고 그 이듬해 가을에 결혼했다.
눈에 띄게 흰 머리가 늘어가는 그이가 마흔아홉살에 세상을 뜨셨다는 그이의 어머니를 아직도 못잊어하듯이, 어느결에 친정 엄마가 혼자되셨던 그 나이를 훌쩍 넘어선 나 역시 너무 일찍 세상을 버린 내 엄마를 못잊고 그리워한다.
비록 얼굴도 뵙지 못한 시어머니이긴 하지만 고생만 하시다 가셨다는 그어머니가 마치 불행했던 내 친정엄마 같이만 느껴져서 친정 엄마 제사날 만큼이나 소중하게 시어머니 제사날을 기억해왔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정엄마 제사가 열두번이나 지나도록 번번이 장모 제사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것 같은 그이를 보면 『장모얼굴도 보지 못했으니 그렇겠지』하고 생각하면서도 서운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다.
부부가 오래 같이 살다가 보면 얼굴도 닮아간다더니 우리는 이제야 마음도 닮아가려는가 보다.
성화를 부리지 않아도 장모제사에 가겠다고 선뜻 나서는 그이를 보면 엄마는 비록 반기며 달려나오진 못하지만 『외동딸 사위가 왔다』고 얼마나 반가와하실까.
이번 엄마 제사엔 붓글씨로 정성스럽게쓴 지방대신 그이가 오랜만에 장모 얼굴이라도 볼 수 있도록 엄마사진이라도 꺼내 놓으라고 큰 올케한톄 전화를 해야 할까보다.

<경기도안양시안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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