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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 상가리. 시조 부원군의 손자인 중낭장공파의 후손들이 5백여년 가까이 내리살아온 변씨 동족부락.
마을전체 90여가구중 60여가구 3백여명이 변씨 일문이다.
중낭장공은 고려말 기울어가는 왕조의 운명을 한탄하며 귀양온 변씨의 입도시조.
이 마을에 최초로 변씨의 뿌리를 내린 인물은 중낭장공의 15대손인 변성보. 그는 조선 영조때 특채로 무과에 등용된 인물로 젊어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상가리 이웃인 나북마을에서 살았다. 하루는 배고프고 병에 걸린 늙은 중을 돌봐주니 그중이 동쪽으로 가면 짐터가 좋은 곳이 있다고 일러주어 이마을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마을의 명물인 팽나무는 원래 10그루가 있었는데 60년 사라호 태풍에 의해 대부분 뿌리째 뽑혀 죽어버렸고 이제 상가리 l666 변승택씨(46·농업) 집 앞마당에 한그루만 남아있다. 제주도청은 77년 이나무를 고수보호목으로 지정했다.
지난 48년 공산당 무장폭도들이 일으킨 4·3사건으로 마을은 한때 피로 얼룩졌었다. 한라산을 거점으로 유격전을 벌였던 남로당 폭도들이 48년4윌3일 제주도전역에서 일으킨 폭동사건으로 주민15명이 살해당하고 가옥들이 불탔다.
이사건 직후 제주도에 주둔중이던 조선경비대 제9연대는 즉시 진압작전을 개시하는 한편 마을주민들에게 해안가로 대피할 것을 명령했으나 주민들은 이를 거부, 마을을 스스로 지킬 것을 다짐했다.
15세이상의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민간경비대인 민보당을 만들어 마을수호에 나섰다.
49년4월 공산폭도의 괴수 이덕구가 조선경비대에 의해 피살되면서 이 폭동사건은 진압되었고 따라서 민보당도 해체되었지만 마을주민들의 반공정신과 자위정신은 길이 빚난다. 제주의 4대향교중 하나인 서학당이 있어 예부터 양반마을로 알려져왔던 것도 이마을의 자랑.
『7대조 변성보를 비롯, 7명이나 과거에 급제해 양반 집안으로 행세했지요.』 종친희고문 변승규씨(62)는 『후손들이 이와같은 전통을 이어받는 것은 꼭 관직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양반의 마음가짐을 간직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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