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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갑상선암이 쉬운 암이라 했던가!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몇 개월 전부터 필자의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은 환자가 있어 생각 날 때마다 오 코디네이터에게 묻는다.

"오 코디, 조00 환자한테 연락 한번 해봐요, 마지막 본 날짜가 2013년 2월26일로 되어 있으니까 그 이후로 아무 소식 없는 걸 봐서 아마도 사망했는지 모르겠네.... 그때도 마지막에는 환자 가족이 진통제만 한달 치 타갔는데..."

"그렇잖아도 교수님이 몇 번 말씀하셔서 전화를 몇 번 했는데 도무지 전화가 되지를 않아요"

"사망했으면 진단서라도 끊으러 왔을 텐데..."

이 여성환자분을 처음 만난 것은 1997년 12월27일이었다.

이미 두 번이나 갑상선 유두암으로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한 왼쪽 갑상선이 있었던 부위를 중심으로 상(上)종격동까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암이 재발이 되어 필자를 찾아 온 것이다.

첫 번째 수술은 1990년 25세 때 지방병원에서 왼쪽 반 절제만 한 정도이었으니 그리 심한 정도는 아니였을 것으로 추정되었고, 두 번째는 1995년 왼쪽 옆 목 림프절에 여러 개의 전이가 발견되어 신촌 세브란스에서 필자의 선배교수님께서 왼쪽 옆목림프절 청소술을 했는데 그만 또 재발이 심하게 된 것이었다. 또 수술하기가 난처해지니까 선배교수님께서 "박교수가 어떻게 맡아서 치료해 보셔" 해서 필자가 맡 게된 것이었다.

햐~, 엄청 어렵고 위험한 수술이었지만 1998년 1월에 재발 암 조직을 분리해내고 남아 있던 오른쪽 갑상선을 떼는 수술을 하고, 수술후 고용량 방사성 요드치료를 하였던 것이다.

근데 왠걸 2년 후에 그전에 수술했던 왼쪽 옆 목 림프절 Level II 와 III 에서 또 재발이 된 것이다. 그래서 또 제거 해주었지.

이제 괜잖겠지 했는데 또 2년 후가 되는 2003년에는 오른쪽 옆 목 림프절과 왼쪽 갑상선바탕(thyroi bed), 중(中)종격동 림프절까지 암이 확산된 것이 발견 된 것이다.

실망하는 환자를 설득해서 또 수술을 하고...

오른쪽 옆 목 림프절 청소술, 왼쪽 갑상선바탕 재발암 제거, 흉골 열고 종격동 림프절 청소술...또 고용량 요드치료를 추가 하고....

이런 초인적인 인내와 치료에도 불구하고 1년후 쯤에 또 재발이 나타난 것이다.

오른쪽 갑상선 바탕, 흉골 근처 上종격동, 왼쪽 갑상선 바탕.....환자의 목소리는 쉬고....

이제는 환자도 더 이상의 수술은 안 받겠다고 하고 필자도 수술로서 완치시키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환자의 암이 전형적인 유두암에서 예후가 나쁜 저분화암의 일종인 섬모양암(insular cancer)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술과 방사성요드 치료 대신 2004년말부터는 재발암부위에 에탄놀(ethanol)을 주입하는 치료를 시작 한다.

3개월 간격으로 암 재발 부위에 에탄놀을 주입하니까 의외로 요지부동하던 암덩어리가 작아지기 시작하여 2005년 8월경에는 육안으로 보이던 암덩어리들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환자도 고무되고 필자도 고무되어 2011년 9월까지 희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한다.

필자가 고무된 것을 보고 고통스런 치료과정을 조용한 성격의 환자는 별 말없이 잘 참아 내어 주었고......

아~~, 필자의 칭찬으로 모든 고통을 잘도 참아 왔는데.....환자의 운이 여기까지 밖에 안되었던가...

2011년 11월, 그만 뇌에 전이 종양들이 발견되고, 폐에도 여러 개의 전이 종양들이 확 퍼지고, 흉추와 흉골에도 괴물같은 종양이 다시 살아나고......

한번 퍼지기 시작하니 겉잡을 수 없이 암 덩어리들이 이 연약한 환자를 무차별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뇌전이 종양 때문에 극심한 두통과 구토 때문에 환자의 눈빛이 흐려지고, 폐전이 때문에 숨도 차고.....

오~, 하느님, 왜 이러십니까?

치료 목적은 아니지만 커져가는 종양의 크기를 줄여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외부방사선치료를 시작하였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이 마져 환자가 포기하려 한다. 흉부 척추 4,5,6번의 파괴로 하지 마비까지 오고........

그래도 가족과 의료진의 지극한 설득으로 뇌와 흉추의 방사선치료를 받아내어 2012년 9월 하순까지는 잘 버텨내어 주었다.

그러나 이 이상의 치료는 환자와 환자가족에게 고통만 더 안겨주는 의미 없는 것이라 판단되어 진통제 처방만 하기로 하고 가족과 환자의 원대로 귀가 하기로 한 것이다.

퇴원 후 1개월 간격으로 남편 아니면 딸이 대신 와서 진통제를 받아가곤 했는데 2013년 2월 26일 이후부터는 소식이 끊어졌던 것이다.

근데 바로 어제 남편 분이 방문했다. 환자의 보험관계 때문이란다.

"환자분 소식이 너무 궁금했어요. 돌아가셨을 거라고 예측하긴 했는데...언제 돌아 가셨어요?"

"2013년 3월11일에 세상 떴지요. 너무 고생 많이 했지요, 환자도 교수님도........"

"아닙니다. 환자분 성품이 너무 좋았는데..."

이 착한 환자는 25세에서 48세까지 23년간을 이 세상에서 갑상선암과 싸움만을 하다가 한 많은 생을 마감한 것이다.

"갑상선암의 10년생존율이 좋다고 누가 갑상선암이 쉽다고 했는가? ... 이 사람들아....사람 생명 두고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네......"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 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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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기자 sohopeacock@naver.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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