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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100대 드라마 ⑤여성] 44. 몸 가꾸기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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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맏며느리들, 미니스커트를 입다

1964년 개봉된 영화 ‘맨발의 청춘’의 여주인공 엄앵란. 그는 당시‘잘생긴 맏며느리감’으로 인기가 높았다. 문희ㆍ태현실ㆍ도금봉 등 60년대 인기 여배우들은 대체로 턱이 넓고 둥그스름한 얼굴에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이미지였다.

그러나 얼굴이 전통형이라 해서 몸매 또한 한국적일 거라고 짐작하면 오산이다. 68년 10월 20일자‘선데이서울’을 보자. 최은희: 키 1m63㎝, 38-24-38인치(가슴둘레ㆍ허리ㆍ엉덩이 둘레 순), 김지미 : 1m60cm, 34-22-34. 약간의 뻥튀기를 감안한다 해도 당시 인기 여우들의 몸매는 서구의 글래머 스타 소피아 로렌을 닮고 있었다.

여성들의 몸 가꾸기는 60년대 말~70년대 초 본격화됐다. 경범죄 단속에도 불구하고 70년대 미니스커트와 핫팬츠가 대유행을 했고 뻗은 다리와 잘록한 허리를 만들기 위해 여성들은 경쟁했다.

이 과정에서 미인의 기준도 달라졌다. 80년대 말부터 성에 대한 담론이 활성화되면서 ‘섹시코드’가 주요 컨셉트가 됐다. 입술을 도톰하게 보이기 위해 립스틱을 입술 윤곽 바깥으로 칠하고 깊이 파인 옷으로 풍만한 가슴을 살짝 드러냈다. 청순 이미지를 벗고 90년대 중반 섹시 미녀로 거듭난 김혜수가 대표적인 사례다.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뽑힌 여성들은 한결같이 쌍꺼풀진 눈, 오똑한 코, 주먹만한 얼굴에 큰 입 등 서구적인 외모를 뽐냈다. 체형도 점점 가늘고 길어졌다. 60년대 미스코리아의 평균 신장은 1m56㎝, 체중은 53㎏이었다. 그러나 79~81년엔 1m66㎝에 50㎏으로, 98년엔 1m74㎝에 50.7㎏으로 빼빼 마른 몸매를 갖게 됐다.
노출패션인 쫄티와 배꼽티의 등장도 날씬한 몸매 가꾸기를 부추겼다. 여성들은 날씬해진 몸매로 한층 과감한 노출을 시도했다. 옷이 날개가 아니라 몸이 날개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 디자인하라! 몸을!

몸가꾸기 문화는 80년대 후반 들어 질적으로 변모했다. 몸의 단점을 보완하는 옷이나 코르셋 등의 속옷류, 그리고 피부관리에서 헬스ㆍ성형과 같은 보다 적극적인 몸매 관리로 나아갔다. 90년대 들어 기업이 사원 채용시 외모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으면서 더 이상 아름다움은 취향이거나 선택일 수 없는 ‘생존수단’이 됐다.
2000년대. 외모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의 대상이다. 머리카락에서부터 치아ㆍ두피ㆍ얼굴 윤곽ㆍ가슴ㆍ보디라인ㆍ허벅지, 심지어 은밀한 부위의 털까지 모든 것을 관리하고 변형시킨다. 성형외과ㆍ피부과ㆍ스킨케어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뷰티산업이 기업화되고 놀라운 기술력과 홍보마케팅으로 하루가 다르게 뉴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 미인박복이란 말은 옛말이다. 잘 다듬어진 육체를 자본으로, 일시에 수억대의 돈을 버는 전지현 같은 스타들이 등장했다.
발전한 뷰티산업은 중년여성과 남성도 소비자로 끌어들였다.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남녀가 성형외과와 뷰티숍의 고객이 되었다. 2003년 말엔 20대 몸매를 가진 40대 몸짱 아줌마가 등장해 헬스클럽의 열풍을 가열시켰다.

# 뚱뚱해도 좋아, 삼순이 열풍

최근 외모 가꾸기의 화두는 건강미인과 자연미인이다. 건강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하는 바람이 불면서 한때 미운 오리새끼였던 옥주현이 요가로 몸을 다듬고 대표미인이 되었다. 무리한 다이어트보다는 요가나 필라테스 같은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고 성형수술의 결과도 매우 자연스러워야 한다.

몸 가꾸기 열풍에 대해 비판문화도 형성됐다. 90년대 후반, 외모 중심 문화를 비판하는 안티 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이 높은 호응을 얻어 2002년부터 미스코리아 대회의 지상파 방송 중계가 중단됐다. 올 초에는 빅사이즈 여성을 위한 빅우먼 패션쇼가 열렸는가 하면 인터넷에는 살빼기 반대 운동과 거식증 반대 사이트, 그리고 라지 사이즈 이상의 큰 체형용 옷만 파는 사이트도 생겼다. 획일화된 아름다움의 기준에서 벗어나 융통성있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마련하려는 작은 노력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자연스러움에 대한 희구는 결국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시작된 삼순이 열풍으로 이어진다. 세간의 기준으로는 뚱뚱하고 퉁명스러워 보이지만 개성 있고 인간미 넘치는 주인공 김삼순이 종방 50%대의 시청률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김영옥 교수는 “여성의 외모에 대한 정형화된 요구가 그동안 사람들을 얼마나 억압하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방증”이라며 삼순이 열풍을 분석했다.

박미라 ‘이프’ 편집위원

'싸나이’에 가슴 졸이고 ‘꽃미남’에 환호하고

미인상이 변하듯 미남상도 변한다.
1960년대는 신성일ㆍ최무룡ㆍ박노식 등 일명 ‘싸나이’들의 시대였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91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최민수가 ‘터프가이’의 전형을 보여 준 뒤 그들은 텔레비전에서 물러가거나 희화화된 상태로 남아있다.

90년대 중반에 배용준ㆍ송승헌 등 꽃미남 원조가 탄생한다. 짙은 속눈썹과 쌍꺼풀에 부드러운 미소가 일품인 이들이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2000년부터는 권상우ㆍ조인성(사진) 등 본격 꽃미남들이 줄을 이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져 문화상품의 소비 주체가 되면서 이들의 시선을 즐겁게 할 남성들이 필요해진 것이다.

그러나 꽃미남 시대도 곧 갔다. 2002년 월드컵대회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데이비드 베컴과 안정환이 축구선수라는 남성적 이미지에 여성스러운 외모를 조화시켜 단번에 여성들의 시선을 끌어모은 것이다. 꽃미남 남성 연예인들도 근육질 몸매를 만들었다. 여성적 얼굴에, 남성적인 몸. 남성들은 자신의 몸 안에 양성성을 구현하면서 메트로 섹슈얼 시대를 열었다. 남성화장품 브랜드 ‘꽃을 든 남자’는 메트로 섹슈얼족의 양성적 이미지를 활용해 엄청난 부가가치를 올렸다.

이제 보통 남자들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외모 관리의 전선에 나서게 됐다. 2004년 말 한 컨설팅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40세 이하 남성 응답자의 75%가 ‘외모는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이라고 답했다. 21세기 외모 가꾸기 문화는 남성에게 더욱 극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박미라 ‘이프’ 편집위원

화장품 모델 변천

화장품 광고에 실제 모델이 등장한 것은 1956년이었다. 2년 후 글래머 여배우 이빈화가 가슴 일부를 드러낸 파격적인 광고에 등장해 장안의 화제가 됐다. 광고 화장품은 ‘검은 얼굴이 눈송이처럼 희게 되는 파라솔 크림’등이었다. 당시엔 동네마다 북을 둥둥 치고 다니며 화장품을 덜어 파는 ‘동동 구리무’도 여전히 서민들에게 인기였다.

70년대엔 여성 화장품에 색깔이 등장한다. 그 이전까지는 로션ㆍ크림 등 기초화장품이 주로 사용됐다. 신인 탤런트였던 한혜숙이 눈화장을 짙게 하고 광고에 등장했다. 눈화장을 통해 인상까지 바꿀 수 있다고하자 여성들이 색조 화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 청바지ㆍ장발ㆍ청년문화 등이 대두하면서 포마드가 사라졌다.

80년 컬러 TV가 나오면서 여성 화장에‘색의 혁명’이 일어났다. 서구적이고 세련된 마스크의 황신혜가 세가지 립스틱과 세가지 섀도를 선보였다. 섞어쓰는 립스틱과 섀도는 여성마다 다른 개성미를 연출했다. 86년 젊은 세대를 겨냥한 화장품이 나와 화장하는 나이를 10대 후반으로 확 낮췄다. 이때는 남성 화장품이 널리 보급된 시기이기도 했다.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90년대엔 피부 노화의 주범인 유해산소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려는 관심이 높아졌다. ‘산소 같은 여자’라는 광고 카피가 히트를 했다. 배우 신은경이‘나만의 개성’을 찾는 X세대 여성으로 등장해 ‘튀는’ 화장을 선보였다. 입술이 꽃분홍색이 됐다가 어느날 흑장미빛으로 돌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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