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돌·좌변기·혈압계 … 교도소 노인 전용방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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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대구교도소 노인 전용 수용동 수형자들이 종이컵 쌓기를 하며 치매 예방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대구교도소]
운동기구를 이용해 몸을 풀고 있는 모습. [사진 대구교도소]

지글지글 온돌 바닥에 혈압측정기, 좌변기와 뜨끈한 온수….

 민간 노인 요양기관에서나 볼 법한 시설이 교도소에 등장했다. 고령 수형자들을 따로 모아놓은 ‘노인 전용 수용동’ 얘기다. 이곳에선 노인 수형자들이 동네 근린공원에서 볼 수 있는 각종 체조 기구들을 이용해 뭉친 근육도 풀고 근력도 유지할 수 있다. 온기 없는 마룻바닥에 변기도 쭈그려 앉는 일반 수형자 방과는 딴판이다.

 현재 전국 교도소에서 운영 중인 노인 전용 수용동은 모두 네 곳. 지난 5월 서울 남부교도소를 시작으로 10월까지 대구·대전·광주교도소에 잇따라 마련됐다. 교정본부가 한 곳당 2000만~4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17㎡(약 5평) 크기로 조성했다. 현재 37개 노인 수형자 전용방에 141명이 수용돼 있다. 형기를 4개월 이상 남겨둔 65세 이상 노인이 대상이다.

 교정본부가 노인 수용동을 별도로 운영하기로 한 것은 교도소에도 어김없이 불어닥친 고령화 바람 때문이다. 국내 52개 교도소에 수용되는 기결 수형자는 연평균 3만 명. 이 중 65세 이상은 2011년 776명(2.6%)에서 2012년에는 948명(3.2%), 지난해에는 1076명(3.6%)으로 계속 늘고 있다. 더욱이 이들 중에는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거나 기력이 쇠한 수형자가 적잖다. 이에 교정본부는 이들이 일반 수형자와 똑같은 환경에서는 정상적으로 생활하기 어렵다고 보고 노인 수형자들만 따로 모은 시설을 운영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곳에선 노인들의 건강을 돌보기 위한 각종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치매 예방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대구교도소에서는 노인 수형자 37명이 매주 월요일 소강당에 모인다. 종이컵을 탑처럼 쌓는 놀이도 하고 과일이나 비행기 그림도 그리는 등 ‘미술 놀이 치료’를 받기 위해서다. A(73)씨는 “전문 강사가 진행하는 미술 놀이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라 고 말했다.

 대전교도소는 한지로 그릇이나 꽃바구니를 만드는 한지 공예를, 서울 남부교도소와 광주교도소는 텃밭에서 야채를 키우는 원예 프로그램을 치매 예방 프로그램으로 활용 중이다. 관절염·류머티스 등 노인성 질병 예방을 위한 건강체조 교실도 열린다. 서로 지압을 해주며 전문 강사에게 요가를 배우기도 한다. 서울 남부교도소는 음악을 틀어놓고 다함께 춤을 추는 라인 댄스를 건강체조 프로그램으로 활용하고 있다.

 노인 전용방에서는 1주일에 두 번씩 의사들이 노인 수형자들과 일대일로 만나 건강을 살피고 치매 여부를 판단한다. 6개월마다 정기 건강검진도 실시한다. 일반 수형자의 건강검진은 1년에 한 번이다. 이곳에선 ‘작업’도 따로 없다. 일반 수형자들은 공장 등에서 의무적으로 작업을 해야 하지만 노인 수형자들은 풀로 종이를 붙여 쇼핑백을 만들거나 편지봉투를 접는 것 등으로 대신한다.

 교정본부 관계자는 “죄를 지은 사람에게 너무 과분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지만 고령화시대에 대비하고 인권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노인 전용 수용동에 대한 호응이 큰 만큼 필요에 따라 인원을 늘려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구=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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