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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바다다 … " 말문 트인 자폐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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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 성모복지원 원생들과 자원봉사자들이 강원도 한화리조트 내의 유원지에서 놀이기구인 바이킹을 타고 있다.

17세 재욱이는 손톱으로 자신의 머리를 긁어 입으로 가져가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재욱이의 정수리에는 언제나 피딱지가 사라지지 않는다. 심한 자폐증을 앓기 때문이다.

그런 재욱이가 12일 난생 처음 동해 바다를 보았다. 그러곤 놀랄 정도로 밝아졌다. 평소 한마디도 않고 지내던 재욱이가 갑자기 "바다"라고 외친 것이다. 늘 곁에 있던 선생님도 놀랐다. 유원지에서 놀이기구인 '바이킹'을 타면서 "재미있다. 또 타자"라며 환호하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 "이 아이가 이렇게 말을 잘했나"라고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10살 용태부터 17세 재욱이까지 16명의 장애 어린이.청소년이 이날 처음 동해 바다와 설악산을 구경했다. 처음으로 즐긴 장거리 여행이기도 했다. 아름다운 가게와 한화 리조트가 충남 아산시 성모복지원에서 생활하는 정신지체장애인 가운데 여행 경험이 없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뽑아 10~12일 한화 설악 리조트에서 사흘 일정의 '아름다운 여름 캠프'를 연 것이다. 이들은 태어나서 처음 바닷가 체험을 한 것은 물론 수영장에서 온천 침수욕을 경험했으며 수중 물리치료를 받았고 난타 체험, 숲길 산책, 지점토를 이용한 핸드 프린팅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모두 신체.정신 치료에 도움이 되는 음악.미술.놀이 치료 프로그램들이다. 놀이기구 타기도 빠질 수 없었다. 서울여대 자원봉사단 13명과 한화 직원 등으로 구성된 자원봉사 인력 30여 명이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행사를 진행했다.

이들은 태어나서 가장 멀리 여행을 했다. 하지만 피곤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용빈이(10)는 인형극 무대에 올라 '어머나' 노래에 신나게 몸을 흔들어댔고, 용태는 얼굴에 호랑이 그림을 그린 채 산토끼 노래에 장단을 맞춰 열심히 병을 두드리며 '난타' 실습을 했다.

성은이(13)는 유원지에서 놀이기구 '폭풍열차'를 타본 뒤 재미있다며 두 번 타겠다고 떼를 썼다. 성은이는 복지원에 남아 있는 친구들에게 자랑하겠다며 쪽지에 자기가 탄 놀이기구와 탑승 횟수를 또박또박 적었다.

성모복지원의 이장섭(43) 교사는 "우리 아이들도 더 많은 애정과 기회를 얻는다면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형진이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밝혔다. 이 교사는 "이번 여행은 그동안 자기 세계에만 빠져 제멋대로 행동하던 아이들이 외부 질서와 화합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식사시간에 줄을 서서 밥을 타먹고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강사가 시키는 대로 잘 따른 것은 큰 발전"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행사에 자원봉사자로 참가한 서수민(20.서울여대)씨는 "애들이 손잡는 것을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다"며 "예전에 정신지체 아이들을 대할 때는 무섭고 꺼리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번 캠프를 통해 그들도 애정에 굶주린 순수한 존재라는 걸 느끼게 되면서 꺼리는 마음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서씨는 "외부의 관심과 애정이 아이들을 변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믿고 앞으로도 계속 이들을 돕겠다"고 밝혔다.

◆ 움직이는 가게 행사도 열려=이번 캠프가 열리고 있던 11일에는 아름다운 가게와 한화 리조트가 공동 주최한 '움직이는 가게' 행사가 한화 설악리조트 프라자랜드 광장에서 피서객,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열렸다. 이 행사에선 연예인 전진.이청하.이완 등이 내놓은 소장품과 한화 이글스 선수단에서 쾌척한 야구 물품, 한화리조트 임직원과 지역 주민들이 기증한 의류 등 6000여 점의 물품이 판매대에 올랐다. 지역 장애여성단체에서 손수 제작한 귀걸이.목걸이 등도 손님을 맞았다. 이날 430여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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