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중·일 공용한자 808자를 교린의 새 출발점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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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달 29~30일 일본에서 열린 한·중·일 문화장관 회의가 3국 문화협력 방안을 담은 공동성명서를 채택했다. 성명서에는 지방 도시와 문화기관 간 교류, 문화산업 협력이 포함됐다. 3국은 지방 간 협력 증진 차원에서 청주시와 중국 칭다오시, 일본 니가타시를 2015년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선정했다. 한·일, 중·일 간 역사·영토분쟁으로 동북아에서 불신과 대립이 가시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3국이 문화교류·협력 강화에 합의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같은 한자 문화권의 3국 간 교류·협력은 상호 이해와 우호의 촉진제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의 버팀목이기도 하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아시아 시대를 오게 하는 길이다.

 회의에서 시모무라 하쿠분 일본 문부과학상은 3국에서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808자의 한자를 문화교류에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관련 3국 국장급 회의에서도 상용 공통한자 선정이 의미 있는 일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3국의 각계 저명인사로 구성된 한·중·일 30인회는 지난해 상용 공통한자 800자를 선정했고 올해 808자로 확정한 바 있다. 올해 회의에선 공통 상용한자를 3국 도로 표지판이나 상점 간판, 학교 수업 등에 사용하자는 제언도 나왔다.

 이번 문화장관 회의 공동성명서에는 공통 상용한자 부분은 들어가지 못했지만 3국 정부 차원에서 구체적 활용방안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기를 기대한다. 3국 공통 상용한자 사용 확대는 미래 세대에게 한자 문화권의 가치를 공유하고 인문 교류를 강화하는 기회를 주게 된다. 3국 간 국민 교류의 시대에 공통 상용한자를 도로 표지판 등에 활용하면 그 이점은 누구나 피부로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 3국 간에는 일정 부분 해빙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중·일 정상회담이 실현됐고, 지난 2년간 열리지 못했던 3국 정상회담 개최 문제도 논의되기 시작했다. 3국 공통의 언어 사용 확대를 교린(交隣) 관계 회복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만큼 현실적인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