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대사의 전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그동안 이곳을 거쳐간 사람만도 줄잡아 30여만명. 시대의 변천에 따라 민족지도자에서부터 한때 위세가 등등했던 세도가, 군장성, 재벌급에 이르는 유명인사와 흉악범·간첩·잡범등 온갖 계층이 고루 거쳤다.
서울구치소가 문을 연것은 구한말인 1908년7월16일. 현재의 서울현저동10l번지에 「천성감옥」으로 문을 열었다.
이 자리는 조선초기의 명승 무학대사가 무악재를 넘으며 『터는 좋은데 3천명의 홀아비가 탄식할곳』이라고 말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 이말이 적중한 것인지 창설당시의 수용규모는 3천명이었다.
그후 4년만인 1912년 마포형무소(안양교도소의 전신)가 경성감옥이란 이름으로 설립되면서 서울구치소는 서대문감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계속해 서대문형무소(23년) 경성형무소(46년) 서울형무소(50년) 서울교도소(61년)로 개칭되다 67년부터 현재의 이름인 서울구치소로 불리고있다.
규모는 대지 6만여평에 건평8천여평. 재소자가 가장 많았던 69년에는 7천여명으르 포화상태에 이르자 영등포구치소를 지어 분가시키기도했다. 현재 하루 드나드는 재소자는30∼40명.
이곳에 수용되는 사람은 서울형사지방법원등에 계류중인 미결수와 서울고법관내의 미확정무기수·사형수로 우리나라의 큰형사사건관계자는 거의 수용되는셈.
초대 대통령이던 이승만박사도 독립운동을 하다 이곳에 투옥된적이 있어 해방후 환국하자마자 이곳을찾아 자신이 갇혀있던 방을 둘러보았다고 한다.
6·25때 기록이 모두소실되어 53년 이전의 재소자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일제때는 유관순열사등 많은 애국지사들이 이곳을 거쳤다는 것이 교도관들의 입으로 전해지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