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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애가 말하는 즐거운 학교생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항용, 꽃들은 제 계절을 만나 피어나게 마련이지만 봄과 여름동안 많은 꽃들이 뽐내듯 다투어 피는 계절을 피해, 가을이 되어서야 과꽃은 피어난다.
하늘까지 푸르러서 한 여름 찬물을 끼얹었을 때의 시원함처럼 과꽃들은 참으로 청초해 보인다.
저녁 무렵 마당의 과꽃을 내다보고 있노라니 문득 그리운 친구를 불러 그녀가 늘 좋아하던 내집의 된장찌개를 나누어 먹고 싶다.
저녁 밥상을 앞에 놓고 이런 생각에 빠져 있는 내게
『엄마, 엄마』
국민학교 2학년인 딸애가 풍선처럼 잔뜩 들뜬 마음으로 다급하게 나룰 불렀다.
『왜 그러니?』
딸애는 장난기가 어린 얼굴이 되어 낮에 학교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엄마, 이건 선생님과 우리와의 비밀인데…』
『비밀을 엄마한테 얘기하면 어떻게 하니? 비밀은 지켜야지』
『아이, 그래두우-.』
말을 해야 하겠다는 거다.
딸애가 말한 것은 내일 연구수업이 자기 반에서 있는데, 연구수업을 잘 해내면 선생님이 미니 올림픽을 해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다는 것.
미니 올림픽?
재미있어 귀를 기올였더니 『으흠, 첫째는 「1백m 달리기」인데 1백부터 거꾸로 숫자를 누가 빨리 세나이고, 둘째는 「마라톤 경기」인데 구구단을 2만부터 9단까지 하나도 틀리지 않고 누가 빨리 외나이고, 세째는 「누가 제일 멀리 보느냐」인데 눈이 큰 사람이 멀리볼 수 있다는 것이고….』 딸애는신이 났다.
딸애가 말하는 미니 올림픽은 지금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거기에 재미까지 양념처럼 곁들여서 딸애의 담임 선생님이 창안해 내신 거였다.
가끔 딸애는 학교 생활을 마냥 즐거워서 털어놓곤 했다.
『엄마, 공부가 끝나고 교실에서 나오면서 내가 노래를 불렀거든. 그랬더니 선생님이 따라 나오시면서 같이 노래를 부르셨어. 선생님도 그 노래롤 알고 계셨나 봐.』
자기가 아는 노래를 선생님이 같이 불러주신 것이 무척 자랑스러웠던 모양이고, 『엄마, 수수께끼 가르쳐 줄께.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형님이 아우에게 절하는 것은 벼래. 그러니까 먼저 익은 것이 먼저 고개를 숙이는거래.』 제법 설명까지 곁들여 그애는 배우고 익힌 것을연습하듯 얘기하곤 했다.
이렇게 말하는 딸애의 학교생활을 통해 나는 그애 담임 선생님을 무척 고맙고 다정한 분이라고 생각해왔다.
실제로 선생님을 만나 뵈었을 때 고생이 많으시겠다고 묻는 내 말에 『아이들과 생활하는 것이 저는 항상 제미있고 즐갑습니다』라고 대답하시는 것이었다.
의무나 사명감에서 라기보다 즐거운 보람으로 알고 아이들과 생활한다는 그것-스스로 하는 일에 기쁨을 갖는다는 것처럼 대단한 자기 수양은 없으리라.
이런 선생님 밑에서 공부하는 딸애가 실로 자랑스럽기만 하니, 그 스승에 그 제자 되지 않으리.
항간에 떠도는 선생님과 학부모사이가 그렇게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서울강서구미곡동사의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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