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에블로호함장 로이드 부커|"북괴서 한국군함으로 알고 납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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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푸에블로호사건은 미해군사상 유일한 오점이라는 누명을 남겼다는데 북괴로부터 풀려난후의 생활은?
- 『당시의 피납사건을 수기로 엮어 70년 「나의 이야기」라는 책으로 출판, 한국에도 소개된 것으로알고있다. 73년 해군에서 퇴역한후 작가로서 글을 쓰기도하고 미국각지를 돌며 강연도 해왔다. 최근에는 네브라스카주에서 화가로서 상업미술을 하는등 편히 지내 당시 57㎏이던 체중이 90㎏으로 늘었다)
- 푸에블로호사건의 전말에 대한 견해는 그동안 달라진것이 없는가.
『푸에블로호가 납치되기 40시간전 l·21사태가 있었다. 당시 북괴는 푸에블로호를 이사건에 대한 보복공격을 가하기 위해 출동한 한국의 해군함정으로 오인해 나포했으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더구나 푸에블로호는6·25동란중에는 한국해군에 소속돼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많다.
이사건에 대한 미국정부의 정식견해는 들은바 없으나 나의 이러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 푸에블로호는 북괴가 계속 억류한채 승무원들만 돌아왔는데 배와 승무원들에 대한 뒷소식은?
『우리가 풀려난후 푸에블로호는 청진으로 옮겨졌다는 소문을 들었으나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는 모른다. 수리를 하지않았다면 쓰지는 못할것이다.
나와함께 돌아온 80여명의 승무원들은 대개가 육체적·정신적으로 심한 고통을 겪었으나 거의 아물고 있는 것으로 듣고있다. 나자신도 심한 두통과 한쪽눈의 맹점으로 생활에 지장을 받았으나 이제는 완쾌됐다. 그러나 몇몇 사람은 아직도 육체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한자리에 모일 기회는 갖지 못했다.』
- 다시 한국을 찾게된 소감은?
『72년 일본에 주둔하고있을때 친구롤 만나기위해 서울을 다녀간 적이 있다. 이번 방한은 그후 10년만이다.
비행기안에서 아내「로즈」가 밑에 내려다보이는 한국의 논과 밭이 아름답다는 말을해 나는 고향 네브라스카주의 논과 밭을 연상했다.
푸에블로호사건으로해서 한국은 내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나라가 되었다. 죽을때까지 나는 한국을 잊지못할 것이다.
한국을 생각할때마다 나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북한의 규제된 생활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 앞으로 모든 한국인들이 다시 모여 자유스럽게 생활하기를 바란다』
- 한미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미국정부가 모든 분야에 걸쳐 한국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고 있는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한국의 정치적 상황은 잘모르지만 한국정부가 북한사람들이 하고 있는것보다는 훨씬 많은 자유를 부여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부커」씨는 「로즈」 여사와의 사이에 30세 전후의 두아들을 두고 있으며 이들은 석유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이재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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