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0년] '해방둥이' 한·일 지식인 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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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 60주년 기념대담을 나눈 한국 소설가 최인호(左)씨와 일본 시사평론가 다나카 나오키(田中直毅). 도쿄=박종근 기자

한국의 해방둥이와 일본의 종전둥이인 양국 지식인이 만났다. 소설가 최인호씨는 "한민족의 분단은 일본 식민지배의 원죄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일본의 통렬한 자성을 촉구했다. 일본의 평론가 다나카 나오키는 "일본의 패전은 야만적 침략 행위에 따른 인과응보"라며 "그러나 전후의 일본은 군국주의 일본과 결별했음을 알아달라"고 당부했다. 두 사람은 "한반도의 분단 해소에 일본이 기여하는 것이 양국 화해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대담은 11일 도쿄에 있는 다나카의 사무실에서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최=나와 같은 1945년생들은 한국에선 '해방둥이'라고 불린다. 일본에도 비슷한 용어가 있나.

다나카=한때 '슈센코(終戰子)'란 말이 있었는데 요즘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올해는 한.일 수교 40주년, 종전 60주년과 이른바 보호조약(을사조약을 말함) 100년이 겹쳐 역사의 무게를 더욱 느끼게 된다. 연초까진 한류 붐도 있었고 양국 관계가 좋았다. 그런데 다케시마(독도) 문제로 양국 관계가 한꺼번에 무너져 버렸다. 일본에선 한국이 왜 그렇게 과열 반응을 보였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최=독도 문제는 영토 문제지만 그 이면에 한.일 간의 보이지 않는 감정이 있다. 60년이 지났지만 아직 청산되지 않은 과거에서 비롯된 두려움.불안.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다나카= 두려움과 불안이라 함은 또다시 일본이 한국을 침략할지 모른다는 뜻인가.

최=재침략까지 생각하지는 않지만, 일본의 패권주의와 우경화에 대한 불신이 존재한다. 여전히 한국 사람은 일본을 믿기 어렵다는 말이다.

다나카=한국에서 그런 여론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잘 와닿지 않는다. 일본 사회의 실상을 한국인들이 좀 더 정확하게 봐 줬으면 한다. 일본은 인구 감소 사회에 진입했다. 젊은 세대들은 아이 낳기를 기피하고, 고령자 비율은 계속 증가한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패권주의가 가능하겠느냐. 우경화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보통 시민에게 우경화 이야기를 꺼내면 무슨 엉뚱한 소리냐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우경화, 패권 추구란 딱지표를 붙여놓고 모든 것을 거기에 맞춰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최=나는 반대로 일본인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왜 한국인은 아직도 일본에 대해 그렇게 뼈저린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 이런 점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이다. 진정한 우정은 완전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유럽에선 독일이 분단됐는데 아시아에선 일본 대신 한국이 분단됐다. 단지 식민지였다는 이유로. 그 결과 동족끼리 전쟁도 했고 아직도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이다. 이처럼 뒤틀린 역사의 비극은 일본의 원죄(原罪)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국 사람은 생각한다.

다나카=일본은 20세기에 한국을 유린했다. 일본이 그런 사실을 망각하는데 대해 한국이 분노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최=독일의 포로수용소에 갔을 때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말라"는 문장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일본을 좋아한다. 그런데 일본 친구들로부터 자주 듣는 이야기는, 왜 한국 사람들은 과거 이야기만 하느냐, 이제는 미래를 얘기할 때가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용서를 위해서는 직시(直視)가 필요하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고, 왜 그랬는지를 깊이 인식하고 앞으로는 서로 오해와 갈등이 없게 해야 한다.

다나카=나는 20여 년 전부터 한국 친구들을 사귀면서 한국인의 심정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한번은 한국인 친구와 함께 강원도를 여행했는데 그 친구가 차를 세우고 숲 속으로 안내했다. 그곳엔 큰 바위가 두 개 있었다. 그것은 일제 때 민족 신앙의 장소를 파괴하고 대신 신사를 세웠던 주춧돌이었다. 또 다른 친구는 중학교 때 한국어 사용이 금지되는 바람에 영어 공부조차 영일 사전으로 했다고 한다. 나는 기회가 닿는 대로 내 경험을 다른 일본 사람들에게 들려주곤 한다.

최=나는 두 달만 먼저 태어났어도 이름이 하나무라 진코가 될 뻔했다. 부친이 창씨개명을 했기 때문이다.

다나카=예부터 한국은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였고 일본은 한국문화를 받아들이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화하고 야만적 행동을 했다. 지금의 일본인에겐 좀처럼 이해가 안 되는 문제다. 당시 일본인이 왜 그런 잘못을 저질렀는지 지금 스스로의 손으로 역사를 검증해 봐야 한다. 나는 한국을 식민지화한 일본에 가해진 벌이 패전으로 연결됐다고 본다. 인과응보요, 자업자득이다.

최=그런 업을 풀고 진정한 화해로 나아가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있을까.

다나카=참 어려운 문제지만 한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핵무기가 없는 통일 한국을 만드는 것을 양국이 공통 목표로 삼고, 그 속에서 일본이 어떤 형식으로든 공헌하는 것이다. 통일한국의 경제가 연착륙하도록 일본이 기여할 수도 있다.

최=전적으로 동감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공통된 무언가를 향해 같이 바라본다고 하지 않는가. 일본이 한국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고 한국인들은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이 한반도 통일에 노력해 준다면 진정한 의미의 우호가 싹틀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런 실례를 갖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 당시엔 공통의 목표가 있었다. 그래서 양국이 서로를 응원했고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다나카=최 선생은 작가니까 한 가지 부탁이 있다. 일본 사람들을 모두 나쁜 사람들로 보는 시각을 없애는 데 작품으로 기여해 달라. 한국을 위해 좋은 일을 한 일본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희망적인 이야기를 써 줄 수 없겠나.

최=좋은 생각이다. 나는 김포~하네다 간을 비행기로 오면서 국내선을 타고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두 나라는 그렇게 가까운 나라가 됐다. 21세기엔 마음으로도 가까운 나라가 됐으면 한다.

정리=예영준 도쿄 특파원<yyjune@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 최인호씨는

1970년대 청바지 문화를 대표하는 ‘바보들의 행진’‘고래사냥’등 화제작을 잇따라 발표, 한국을 대표하는 대중작가로 불려왔다. 이후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일그러진 사회상을 그리는 작품세계를 보이다 80년대 말부터는 역사소설에 집중하고 있다. 『바보들의 행진』『겨울나그네』『상도』『해신』『유림』등 50여 권의 창작집이 있다.

*** 평론가 다나카 나오키는

경제·외교 분야를 중심으로 저술 활동을 하면서 정부의 각종 자문기구 등에도 참여하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 시사 평론가. 한국의 정·관계에 지인이 많다. 도쿄대 법학부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21세기정책 연구소 이사장으로 있다. 저서로『군비확장의 불경제학』『일본의 비전』『아시아의 시대』『영화로 보는 20세기』등 2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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