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화한국」의 문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문화의 달, 10월이, 추석과 국군의 날이 겹쳐져 시작된 것은 하나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추석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전통적 명절로서 우리의 기후, 풍토와 결합된 민족적 생산활동이 이룩한 문화제의의 성격을 다분히 띤 행사다.
그에 비해 국군의 날은 두 가지의 현실적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민족적 분단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민족적 염원을 담고있고 다른 하나는 그것으로해서 짜아 올려진 발달된 과학기술문화의 극치를 과시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전통적 생활문화의 유지, 전승이란 면에서 쉽게 추석의 문화성을 인정하지만 국군의 날의 문화적 의미는 망각하기 쉽다.
그러나 문화의 의미를 생각하거나 문화의 현실을 냉철하게 들여다보면 그런 오해를 씻을 수 있게된다.
문화는 보통 인류가 역사 속에서 이루어놓은 정신과 물질의 총화이며, 일체 생활양식과 내용의 전제를 뜻한다.
기본적 의미에선「자연」과 대조되는 의미에서 자연의 개선, 완성을 뜻한다. 농업은 토양을 개선하고 신체적 문화는 신체를 개량하는 것이다.
인간의 문화는 결국 인간성의 도덕적, 지적, 사회적 모든 면에 대한 발달, 개선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화를 정신적인 것만이 아니라 물질적 기반을 제공해주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한「아리스토텔레스」적인 관점은 현대적 의미에서도 정당하다할 것이다.
더 나아가 현대의 사상가들은 문화를 자연의 완성으로 보지 않고 문화와 자연을 인간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갈등으로 이해한다.
그 점에서 문화는 긍정적이되, 문명은 반드시 바람직한 진보로 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인간문명의 발달은 인간의 생물학적, 정서적 충동을 제약함으로써 좌절의 고통을 강요할 수도 있지만, 그 좌절을 극복하기 위해 문화가 생산된다는 이론조차 나오고 있다.
그 점에서 우리의 전통문화와 현대의 과학문명이 갈등 속에서 공존한댜는 것은 의미가 있다.
더욱이 오늘의 현실은 경제발전과 국가안보의 목적이 최우선으로 강조되고 있기는 하지만 모 인간가치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서구적인 문화정신의 영향 속에서 유달리 인간적이고 개성 있는 문화창조 행태가 요구되기도 하는 시점인 것이다.
문명 (civilization)은 도시(city)와 시민 (civil) 과 뿌리를 같이 했다는 의미에서 다분히 타락과 부패를 연상시키고 있다.
과연 산업화와 도시화추세 속에서 우리는 유난히 배금풍조와 도의정신의 타락으로 표현되는 퇴폐문화의 시대를 체험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만연하는 사회병리를 극복하기 위한 「인간다운 삶」의 요구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그렇기는 하나 우리의 국가적 현실은 우선 경제발전과 안보에 정책적 초점이 두어지는 만큼「인간다운 삶」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문화예술의 육성에는 비교적 소루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이해하면서도 올해의「문화의 달」을 맞으며 새삼 문화한국의 미래를 내다보며 우려를 금하지 못한다.
그것은 정부의 문화예산이 내년에 금년보다도 3·4%나 줄어들었다는데 있다.
전체예산에서 차지하는 문화예산이0·3%에도 못 미치는데 그것마저 해를 거듭하며 줄어야 한다는 데엔 실로 실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통해 어떻게 문화한국의 체면을 세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행사가 없더라도 문화예산의 확충은 가장 기본적이라 할 수 있다. 국민의「인간적인 삶」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해를 거듭할수록 더 절실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은 경제적 기반이 강화됨으로써 더욱 발전을 기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의 구축에 힘써야 한다는 것은 물론이지만 경제발전에 상응한 국민의 문화적 욕구의 향유야말로 오늘날 더욱 절실히 인식되어야 할 줄로 믿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