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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아시아의 병자, 대한민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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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국은 아시아의 병자(病者)다. 병에 걸려도 단단히 걸렸다. 일본.중국.인도를 위시한 아시아의 모든 나라들이 건강한 걸음으로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한국만이 앞으로 가기는커녕 뒷걸음질만 치고 있다. 여러 가지 못된 병을 함께 앓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병의 중심에는 대통령이 위치해 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출생부터 심각한 질병을 갖고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통령은 과거의 태생적 병을 치유하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다. 우연히도 대통령의 생각에 동조하거나 이념적 연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또 다른 병을 만들고 있다. 통상 사회 혁명은 일사불란한, 하나의 통일된 리더십이 아니면 성공할 수 없다. 누구의 표현을 빌리면 '너무나 많은 레닌들'에 의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나라는 붕괴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1970년대 영국은 유럽의 병자였다. 파업을 위한 파업, 힘 과시의 주기적 파업, 돌아가면서 하는 순차적 파업이 영국병(英國病)을 만들었다. 더 많은 임금, 더 많은 휴가, 더 많은 복지 … 노조의 요구는 끝이 없었다. 사람들의 근로의욕은 떨어지고 경제는 피폐해져 갔다. 급기야 많은 영국인들이 독일.오스트리아.프랑스 등지로 일거리를 찾아 나서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정기적 탄광노조 파업에 전기마저 수시로 끊어져 가뜩이나 음습하고, 살을 파고드는 영국의 겨울은 더욱 길기만 했다.

총리가 된 대처는 평등주의에 함몰된 노동당의 세금.복지 정책을 사회주의국가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대처는 전국탄광노조의 연례 파업에 대비해 석탄과 석유를 비축했다. 유약해 보이는 여성 총리 대처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 결국 노조를 굴복시켰다. 다른 노조들도 백기를 들고 말았다.

그러고는 눈을 밖으로 돌려 당시 소련이 세계를 공산주의화하려는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에 소련 국방신문이 철의 여인(Iron Lady)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노조 파업에 대처하는 그의 강력한 리더십, 그리고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보고, 소련은 그를 '무서운' 정치인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대처는 귀족 출신 기득권이 아닌, 구멍가게 주인을 아버지로 둔 소시민이었다. 이런 소박한 집안 딸이 병든 영국을 구원해 바로세웠던 것이다.

미국도 비슷한 병에 걸린 적이 있었다. 연례 행사가 된 철강.버스노조 파업에 이어 항공관제사 파업으로 비행기가 뜨지 못하게 되었다. 81년 당시 2년차 대통령 레이건은 복귀시한을 넘긴 항공관제사 1만1,350명을 전원 해고하고 평생 복직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 '영원히' 항공업계에서 추방했다. 레이건은 대처처럼 노조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그것을 바탕으로 경제를 번영시켰다. 더 나아가 이것은 냉전 말기 소련 공산주의자들에게 매우 강력한 메시지가 되어 결국 소련의 해체, 동구의 붕괴라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시대의 종말로 이어지는 대역사를 창조하게 된다.

레이건이 가난한 가정의 비기득권 출신임은 대처와 같다. 특이한 것은 그가 한때 영화노조위원장이었다는 것이다. 많이 배우지는 않았지만 그는 노조위원장과 대통령 직책을 구분할 줄 아는,극히 상식적인 사람이었다.

우리 대통령이 가장 존경한다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공포 정치의 대명사 로베스피에르는 '평등'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혁명의 적(敵)'인 기득권층의 재산.토지를 빼앗아 분배했다. 그러나 평등한 분배 방식은 그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었고 그는 결국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혁명 후반부 프랑스 혁명 공화국은 '인간은 능력에서도 재산에서도 평등하지 않다'는 현실 세계의 진리를 수많은 피 흘림을 통해 깨닫고, 결국 평등법을 폐기하게 된다. 평등은 사회가 추구해야 할 귀중한 사회적 가치다. 그러나 그 한계가 있고, '강제적인 평등화'는 매우 위험한 것임을 일깨워 준다.

지난 80년대와 90년대 공산주의의 해체, 그리고 사회주의 경제의 시장경제로의 전환은 국가 차원에서의 평등주의 실험은 이미 결말이 났음을 증명해 준다. 다만 '코뮨'이라는 마을 단위의 공동체에서는 여전히 지구 여러 곳에서 균등한 삶의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평등하게 사는 것이 소원인 사람들은 코뮨에서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좋은 뉴스'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관열 강원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