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탐지기 검사 有罪 밝힐 증거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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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탐지기 때문에 뺑소니 사망 사고 범인으로 몰려 7개월간 옥살이를 한 40대 남자가 법원의 무죄판결로 풀려났다.

운전기사 李모(48)씨가 뺑소니범으로 몰린 것은 2000년 4월 19일 오전 2시45분 서울 강남구 신사동 도로를 건너던 申모(29.여)씨가 차에 치여 숨지면서였다.

목격자들이 증언한 사고 차량의 색상과 차종, 차 뒷번호의 네자리 숫자를 조합해 경찰이 차적 조회를 한 결과 우연히 李씨의 승용차와 일치했다.

당시 변호사 사무실 운전기사였던 李씨는 그러나 경찰에서 "사고 전날 아침 내 차는 변호사 집에 세워두고 변호사 차를 운전해 다니다 그 차를 타고 퇴근했다"면서 내내 범행을 부인했고 결국 불구속 입건됐다.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도 뚜렷한 물증이 나타나지 않자 李씨를 기소하지 않았다. 당시 李씨의 휴대전화 위치 추적 결과도 "사고 당일 강남 지역에는 가지도 않았다"는 李씨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러는 사이 李씨는 소재 불명 상태가 돼 기소가 중지됐다가 지난해 경찰의 불심검문에서 붙잡혔다.

"하루빨리 범인을 잡아달라"는 피해자 가족들의 진정이 계속되자 검찰은 결국 지난해 10월 李씨를 구속기소했다. 검찰 측이 제시한 주요 증거 중 하나는 李씨의 범행 부인이 거짓이라는 거짓말 탐지기 검사 결과였다. 李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도주차량) 혐의가 적용돼 구치소에 수감됐다.

그러나 6일 서울지방법원 형사10단독 박희승(朴熙承)판사는 李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억울한 심정을 느끼고 있었다면 맥박.혈압 등이 마치 거짓말을 할 때처럼 변화했을 수 있다"는 게 무죄 판단 이유다. 거짓말 탐지기 검사 결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朴판사는 또 "차량 검사 결과 등 다른 정황 증거들도 李씨의 유죄를 입증하기에 불충분하다"고 했다.

판결이 난 뒤 李씨는 3년 동안 겪은 마음 고생, 7개월간의 구치소 생활을 보상받는 방법을 찾아보겠다며 울먹였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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