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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5. 불꽃을 따라서 <21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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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나중에 이 원고를 이문구가 달라고 하여 '월간문학'에 고스란히 실을 수가 있었다. 주위에서는 조마조마했지만 매체가 별로 신통찮은 데라 당국이 미처 집어내지 못했을 거라고들 말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남북 7.4 공동성명을 발표했는데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원칙을 밝힌 성명 내용은 획기적이고 역사적인 진전을 담고 있었지만 곧이어 유신 선포로 종신집권체제로 들어갔고 이북에서는 사회주의헌법 채택으로 수령유일체제가 되는 등 적대적 공존의 분단체제가 공고화되었다.

우리는 청진동 부근의 주점 이곳저곳에서 거의 저녁마다 연탄화덕에 생선이나 돼지갈비를 안주로 소주를 들이붓듯 마셨다. 염무웅이나 한남철은 물론이고 이문구.조태일.방영웅.최민, 그리고 그 무렵에 합류한 신경림.김윤수 등등이었다. 가끔 길 건너 세대사의 주간과 편집장이던 이광훈과 권영빈이라든가 다른 계간지들의 학술 필진과도 어울렸다. 백락청이 미국에서 돌아왔다. 그는 그야말로 얼굴이 새하얀 백면서생이었고 동안이어서 그랬는지 모범생처럼 인상이 차갑게 보이지는 않았다. 백기완의 백범사상연구소에도 계훈제나 이부영 등등 낯익은 얼굴들이 드나들었는데 나는 백기완의 구수하고 힘있는 입담에 대번 매료되었다. 박정희의 유신선언에 반대하여 장준하가 개헌 청원 백만인 서명운동을 제창했는데 우리 문인들도 그것을 지지하고 동참하는 성명서를 명동성당 앞에서 발표하기로 정하고 등사기로 준비된 인쇄물과 함께 각자가 지역과 인물을 맡아서 동의하는 서명을 받기로 했다. 사흘 동안에 문인들 육십여 명의 서명을 받아 명동성당에서 선언문을 낭독한 다음 시위에 참석했던 문인들 전원이 중부서를 거쳐서 중앙정보부로 연행되었다. 그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서명에 동참했던 문인들을 정보부 지하실로 연행하여 조사를 했고 앞에 나온 것처럼 몇 달이 지난 다음에 '문인간첩단' 사건을 조작해냈다.

그해 겨울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어느 술자리에서는 서울대 대학원생이던 서중석.유인태 등과 합석하여 돌아가는 세상 얘기를 나누었고 특히 그 무렵에 손학규 등등과 만나 밤새도록 통음했던 이수인과는 그 뒤 수십 년 동안 호형호제하면서 지내게 된다. 김지하는 이미 한 해 전에 그가 입원했던 마산으로 내가 찾아가 병실에서 끌어내어 진해까지 진출해서 함께 마시는 통에 마산 중정지부에 비상령이 떨어지기도 했다. 김지하는 술길에 내가 살던 우이동 골짜기까지 찾아와서는 내 곁에 누워 자신의 요즈음 소회에 대하여 털어놓고 새벽에 눈을 뜨면 언제 사라졌는지 이부자리가 텅 비어 있곤 했다. 그리고 베개 밑에는 그가 남긴 지폐가 접혀 있었다.

염무웅은 내가 소설 몇 편으로 간신히 생계를 꾸려가던 무렵에 자신도 어려울 텐데 최민.김헌일과 협력하여 카프카 전집을 번역하면서 그 번역료의 일부로 내가 셋집을 얻는데 도와주었다. 모두들 나의 가난과 작가로서의 생계를 걱정하고 있었다. 아마 그 무렵이었을 텐데 염무웅과 흥국탄광 사무실에 놀러갔다가 실상의 업주인 채현국 등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박윤배는 나의 뇌리에 깊이 박힌 사람이다.

그림=민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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