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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나라' 속 '물의 나라' … 마을 전체가 '료칸' 이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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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현 구로카와. 28개 료칸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담한 마을이다. 늦가을 정취를 만끽하기 그만이다.

‘온천 왕국’, 일본에는 독특한 온천 문화가 있다. 이름하여 ‘온천 순례’다. 깨달음을 찾아 고행을 무릅쓰는 순례와는 거리가 멀다. 좋다는 온천을 찾아다니며 목욕을 즐기는 행복한 순례다.

week&이 구마모토(熊本)현 구로카와(黑川) 마을로 온천 순례를 다녀왔다. 깊고 넓은 온천의 세계에 풍덩 빠졌다. 로션처럼 부드러운 물, 탄산음료처럼 톡 쏘는 물에 부지런히 몸을 담갔다. 효과도 톡톡히 봤다. 한동안 뽀얗고 부드러운 피부를 유지했다. 지금은 말짱 도루묵이 됐지만….

온천 마패 구입하면 료칸 세 군데 입장

1 화산가스를 내뿜고 있는 아소산. 2 온천마패. 료칸 3곳을 골라 목욕할 수 있는 입장권이다. 3 일본식 코스 요리, 가이세키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료칸에 묵는 재미 중 하나다. 4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온천탕.

규슈(九州)는 일본을 구성하는 네 개의 큰 섬 중 가장 남쪽에 있는 섬이다. 면적은 우리나라의 절반 정도다. 제주도 한라산처럼 규슈 중심에는 아소산(阿蘇山·1592m)이 있다. 지금도 땅속 저 밑 어딘가에서 용암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활화산이다. 쉴 새 없이 화산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분화구도 있다. 아소산을 품고 있는 구마모토현은, 그래서 ‘불의 나라’로 불린다.

아소산을 넘어가면 오이타(大分)현이다. 우리나라 여행객들은 아소산에서 차로 두 시간을 달려 오이타현 온천도시 벳푸(別府)나 유후인(由布院)으로 가곤 한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구마모토현에 이름난 온천 마을이 많다. 불의 나라 속 ‘물의 나라’인 구로카와도 그 중 하나다. 공항이 있는 구마모토서 차로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구로카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벳푸나 유후인에 비해 덜 알려졌다.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유후인은 1만1000여 명이 살고 있는 소도시이고, 구로카와는 400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이다. 반경 1.5㎞ 남짓한 동네에 료칸(일본 전통 여관)은 28개나 있다. 작은 마을이지만 일본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온천 여행지다. 매년 88만여 명이 이 마을에서 목욕을 한다.

“구로카와는 온천 순례의 명소입니다. 온천 마패를 구입하면 28개 료칸 중에 세 군데를 골라 입장할 수 있습니다. 다른 온천 마을에서는 료칸을 바꿀 때마다 입욕료를 내야 합니다. 우리 마을은 한 번 목욕할 돈이면 하루 종일 료칸을 옮겨다니며 목욕할 수 있습니다.” 구로카와온천조합 대표 다카히로 시모조(38)의 설명이다. 다카히로를 따라 구로카와 관광안내소로 향했다. 안내소에서 1300엔(약 1만2500원)을 주고 온천 마패를 샀다. 삼나무를 잘라 만든 마패 뒷면에 스티커 석 장을 붙여 줬다. 료칸에 들어갈 때마다 스티커 한 장을 떼 간다. 안내소 뒤편에는 일본 전통 옷인 유타카(浴衣)를 빌려주는 가게도 있다. 마을 지도도 한 장 얻었다. 본격적으로 온천 순례에 나설 준비를 마쳤다.

민감 피부는 탄산천, 여드름피부는 산성천

일본은 물에 녹아있는 성분에 따라 온천을 9가지로 구분한다. 구로카와에서는 일곱 종류의 온천을 체험할 수 있다. 다양한 온천에 몸을 담갔던 게 온천 순례의 가장 큰 묘미였다. 약산성이나 약알칼리성을 띠는 단순천, 특유의 고릿한 냄새가 나는 유황천, 탄산가스를 포함한 탄산천, 짠 맛이 나는 염화물천, 철분을 함유한 철천, 수소이온 농도지수가 ph 2~4인 산성천, 황산염이 주성분인 황산염천이 있다. 이산화탄소천·라듐천만 없다.

료칸 산가(山河)와 난조엔(南城苑)에는 피부가 민감한 사람에게 좋다는 온천이 모여 있었다. 다카히로는 “단순천에서 몸을 데우고 나서 탄산천·염화물천 순으로 들어가라”고 추천했다. 탄산이 피부 표면의 지방이나 분비물을 씻어주고 염화물천의 소금기가 피부에 막을 형성해 수분 증발을 막아 준단다. 여드름이 많으면 살균 효과가 있는 산성천, 상처를 아물게 하려면 피부 재생 효과가 있는 황산염천에서 목욕하는 것이 좋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천탕으로 들어갔다. 손가락이 쭈글쭈글해질 때까지 몸을 담갔다. 피부를 불려 때를 미는 한국식 목욕을 생각했다. 일본의 목욕은 우리와 조금 달랐다. 이리 좋은 물을 놔두고서 몸을 ‘적시기’만 하는 듯했다. 온천 순례에 동행한 구마모토현 관광연맹 미요시 후미(三好ふみ·33)가 말했다. “한국 사람은 몸을 깨끗하게 닦아내려고 목욕을 해요. 반면 일본 사람은 몸을 데우기 위해 탕에 들어가죠. 바닥이 뜨끈뜨끈한 한국 온돌방에 비해 일본식 다다미방은 서늘해요. 몸을 따뜻하게 해야 편하게 잠을 잘 수 있거든요.”

일본 사람들은 온천을 하고 나서 물기를 닦아내지 않고 그냥 말렸다. 온천의 좋은 성분을 피부에 흡수하기 위해서다. 노천탕을 오갈 때 작은 수건으로 몸을 가리는 것도 달랐다. 차이점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온천욕을 마치고 노르스름하고 불그스름하게 물든 단풍이 어우러진 마을을 산책했다. 마을에는 어느 것 하나 튀는 건물이 없었다. 1980년대부터 마을 사람들이 함께 가꿨다고 한다. 료칸 벽은 황토색으로, 기둥은 검은색으로 통일했다. 동네의 전체적인 조화를 고려해서 나무나 돌을 배치했다. 작고 예쁜 마을에 대한 입소문은 절로 퍼졌다. 그제야 구로카와 사람들이 마을 전체를 ‘구로카와 료칸’이라고 부르는 게 이해됐다. 한마음으로 똘똘 뭉친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곧 구로카와의 저력이었다.

●여행정보=구로카와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은 구마모토공항이다. 아시아나항공이 인천~구마모토 노선을 주 3회 운항한다. 인천에서 월요일 오후 3시 10분, 목·토요일 오전 9시 30분에 출발한다. 구마모토 출발시각은 월요일 오후 5시 30분, 목·토요일 낮 12시다. 비행시간은 약 1시간 30분. 여행사 인터파크 투어(tour.interpark.com)를 통해 구로카와 온천 여행을 체험할 수 있다. 2박 3일 동안 구로카와·아소산·유후인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44만9000원부터. 02-3479-0125.

글·사진=양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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